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평연습 Oct 31. 2021

세상을 이해하느니 차라리 지어내겠다는 조숙한 다짐

#3. 세 번째 책) 문 보영, <하품의 언덕>



여기 몇 편의 글들은 우리에게 가장 세련된 수준의 언어적 체험을 선사합니다.

일상보다는 환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책, <하품의 언덕>, 문 보영, 한국, 2021.






세상을 이해하는 것보다
세상을 지어내는 게 더 편했던 거야



여기 열여섯 편의 글들이 있습니다. 여덟 편의 짧지만 매력적인 단편들과 또 여덟 편의 <책말이>연작입니다. <현관에 사는 사람>에서 <책말이 8 - 기억 버리기>로 이어지는 이 교차적인 이야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야기, 괴상망측한 이야기…….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인물들은 살아 있지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습니다.


…라는 표현이 최선의 묘사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소설집입니다. 읽고 나면 아마 '내가 뭘 읽은 거지' 라는 생각부터 들 것입니다. 수록된 열 여섯 편의 글들은 마치 독자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듯, 코너로 몰고 위협하고, 겁에 질리게 만든 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죄자 같습니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의미를 알 수 없고 의도조차 불분명한 어떤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맥락도 없고 딱히 메세지도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 그러나 강력한 생명력으로 활개치는 이야기들…….

이들을 읽고 나면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는, 이중의 몰이해가 찾아옵니다.






먼저 여덟 편의 <책말이> 연작으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목만 한번 나열해 볼까요.



<책말이 1 - 표지 버리기>

<책말이 2 - 반대로 말기>

<책말이 3 - 거꾸로 읽기>

<책말이 4 - 결합 풀기>

<책말이 5 - 사라지기>

<책말이 6 - 영원히 읽기>

<책말이 7 - 떠나기>

<책말이 8 - 기억 버리기>



이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해 작가 문보영의 책읽기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녀는 특이한 방식으로 책을 읽습니다. 그날 읽을 분량만큼 책을 찢어서 돌돌 말아 끈으로 묶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한 장씩 떼어내 읽은 후에 가볍게 버리고 옵니다.


책에서 낱장의 종이를 풀어줍니다. 구합니다. 밖으로 꺼냅니다. 책을 찢고, 좋아하는 문장을 외우고, 따라 쓰고, 소리 내어 읽어요. 구겨진 종이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나뭇가지에 올려놓고, 작별 인사는 안 하고 돌아섭니다.
그렇게 책을 방목합니다.
-23p中


찢어 읽은 책을 '가볍게' 버리고 온다는 말이 저에게는 중요하게 들립니다. 책을 찢으면 책이 가벼워진다는 사실은 물리적으로도 당연히 그렇지만 책과 나의 관계 면에서도 성립되는 말입니다.


책이 나를 속박하고, 억누르고, 심하게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화자는 두려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정신적으로 책에 지배당했던 경험, 책에 (여러가지 의미로) 맞아 봤던 경험, 책 때문에 정신을 잃었던 경험.

책과의 관계가 심각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책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화자는 책을 찢어 읽기 시작합니다.


책이 처음부터 낱장으로 존재했다면 누군가를 때릴 수 있는 흉기가 될 일은 없었을 텐데요. 책을 찢어요. 그러면 책을 읽으면서 책을 보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아주 조금씩 나는 책에게 다가가요. 책과의 관계를 회복해요.
-23p中


따라서 문보영의 책읽기는 교양있는 책읽기, 성스러운 책읽기가 아닙니다. 그녀는 책을 신봉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책을 멸시하고 업신여깁니다. 일부러 책에게 무례하게 대합니다. 방목합니다. 책을 아주 가벼운 존재로 여깁니다.


'표지 버리기'에서부터 출발한 책말이는 우선 책을 가볍게 만들고, '결합 풀기' 과정을 거쳐 낱장의 종이을 해방시키면서 완성됩니다.

이제 완성된 책말이를 읽기 위해서는 '반대로 말기'를 해야 합니다.


말린 책을 잘 펴고 싶을 땐, 말았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만다. 독서의 첫 단계는 반대로 말기다. 그것은 펴기이며, 펴기는 군형의 문제다. 책을 뒤로 만다.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두 손을 허리 뒤로 잡아 수갑을 채우듯.
-38p中


그런 다음에는 드디어 독서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주머니에서 꺼내 놓은 책말이들이 제멋대로 굴러 다니다가 순서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뭉치와 뭉치 사이, 낱장과 낱장 사이,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고 질서가 흐트러집니다. 책말이들은 헝클어지고 마구잡이로 섞이면서 뒤범벅 됩니다. 덕분에 이야기는 엉망이 되거나 아예 이야기 자체가 안 되게 되어버리는 것인데, 화자는 이러한 '거꾸로 읽기' 또한 이야기의 한 모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는 순서와 불화했다. 비단 순서와만 불화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만 이야기를 사랑했다.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책말이 중 아무것이나 집어 들고 읽는다. 이야기는 흐트러지고, 질서는 사라지고 세상은 중구난방이 된다.
-81p中


게다가 화자는 '거꾸로' 읽을 뿐만 아니라, '멋대로' 읽습니다. 제 마음대로 지어내서 읽습니다. 이렇게요.


책을 그날 읽을 분량만큼 찢어 다니기 때문에, 이야기가 온전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날은 드물답니다. 오늘 가져온 책은 이렇게 시작해요.

-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디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걸까요. 기억나지 않는군요.

페루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떠나지 않았다.
농담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 멋대로 지어내요. 문장이 온전하지 못하기에 다른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 있어요.
-81p中


이렇게 문보영은 정해진 이야기가 아닌 꾸며낸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고 지어내는 것입니다. 이해하지 않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설명이 안 될 때, 아무 이유 없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을 때,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해 안되는 세상을 억지로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내 맘대로 지어내 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해라는 관점 대신 상상이라는 관점으로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책을 찢어 책말이로 읽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 첫머리에 써 놓았듯이, 그녀에게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보다 세상을 지어내는 게 더 편했기 때문에.


이렇게 멋대로 지어낸 세상을 다 읽고 난 뒤엔, 문보영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뒤돌아 버립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작별 인사는 안 하고 돌아섭니다.'

솜사탕처럼 가벼운 낱장의 책들을 거꾸로, 그리고 제멋대로 읽고 나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둡니다. 거기엔 여운도 미련도 없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다시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읽은 책들은 사라지고, 떠나고, 머릿속엔 아무런 흔적도 없게, 모든 기억을 버립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 읽은 종이들을 무심하게 구겨서 버리고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주 가볍습니다.


'사라지기', '떠나기', '기억 버리기'는 바로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계속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듯이.

어떤 책도 그녀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아주 가볍고, 또 아주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한 장의 책을 영원히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장의 책을 영원히 읽을 수도 있다. (…)

내 앞에 놓인 건 책이 아니라 한 장의 종이여서 넘기는 대신 계속 뒤집게 된다. 책을 뒤집어 읽으면 무한히 읽을 수 있으므로. (…)

169페이지의 첫 문장은 "몇 년이었다." 로 시작한다. 그리고 170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은 "펄럭일 수 있는" 에서 끝났다. 뒤집어 앞 페이지의 첫 문장과 이어서 읽는다

"펄럭일 수 있는 몇 년이었다."

이 문장이 좋아서 책을 여러 번 거꾸로 읽었다.
-159~160p中


이 부분은 왠지, 돌아가는 회전문 속에 갇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작가는 "회전문의 좋은 점은 들어가는 척하면서 들어가지 않을 수 있고 나가는 척하면서 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원하면 그 안에 영원히 갇힐 수도 있다." 고 말하며(38p) 책말이의 한 장을 뒤집어 가면서 영원히 읽습니다.

덕분에 뒤죽박죽의 세상은 우리에게 또 한번의 상상력 발휘를 요구합니다.


가령 "유언장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펄럭일 수 있는 몇 년이었다." 와 같은 문장들.


올바른 문장보다 이런 문장들이 왠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우리가 세상을 멋대로 상상해서 바라볼 때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반증일지 모릅니다.






이제 다른 여덟 편의 단편소설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고, 괴상망측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 이해를 멈추고 바라본다면, 더 이상 혼란스럽거나 당혹스럽지는 않습니다. '내가 뭘 읽은 거지' 하는 어지러움도 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해하는 대신 상상하고 지어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책말이>연작에서 이미 배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까요? 이해를 멈춘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을 앞에 두는 순간, 특히 소설을 앞에 두는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그것의 의미를 밝히고 메세지를 발견하기 위해 애씁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신선한 것은,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함정에 빠진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 소설집 <하품의 언덕>은 문학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해 줄 수 있어 보입니다. 아무 이해 없이 읽는 책, 내 마음대로 읽는 책, 멋대로 지어내 읽고 거꾸로 읽는 책, 다 읽고 나서는 깨끗이 잊는 책으로서 말입니다.


어떤 책들은 읽히는 대신 '체험'됩니다.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떤 분위기에 가깝고, 서사적이라기보다는 경험적입니다. 바로 이 책이 그렇습니다.

앞서 이 책의 단편들을 두고, '맥락도 없고 딱히 메세지도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 그러나 강력한 생명력으로 활개치는 이야기들…' 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이 여덟 편의 이야기들에서 맥락과 메세지보다는 그 생명력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체험한 그 강한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힘이 작가의 '상상력'에서 온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현관에 사는 사람>에서부터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하품의 언덕>을 거쳐, <비사랑꿈>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올바르게 읽는 방법은, 마치 '책말이'를 읽듯 읽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작가 문보영이 책말이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으로, 우리도 이 소설집을 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멋대로 읽고, 지어내서 읽고, 거꾸로 읽고, 영원히 읽고…….


여전히,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인물들은 살아 있지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습니다.


…라는 표현이 최선의 묘사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08.11.21.

instagram : 우리 시대의 책읽기(@toonoisylonelinesss)

naver blog : blog.naver.com/kimhoeyeon

작가의 이전글 수많은 '미완' 사이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완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