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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Jul 30. 2022

간지러운 진심

#69) 이희중, 『나는 나를 간질일 수 없다』, 문학동네(2017)


시인의 산문을 읽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나는 어떤 시인의 시를 읽을 때보다 그가 쓴 산문을 읽을 때, 내가 그의 본모습을 보고 있다고 느낀다. 시는 언어로 행하는 실험이다. 하얀 가운을 입고 마스크와 보안경을 착용한 후 무균실로 들어가는 연구원의 모습이, 시인이 시 쓰는 모습을 상상할 때 내가 떠올리곤 하는 장면이다. 그들이 언어의 무균실에서 아직 발견된 적 없는 수사(修辭)를 배양하면 그것이 곧 시가 된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연구실 밖으로 나갈 땐 편한 추리닝 차림이 될 텐데, 산문은 바로 그때 시작된다. 시가 엄숙하고 삼엄한 실험실에서 탄생한다면 산문이란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나 공원의 벤치, 익숙한 산책로 혹은 오랜만에 놀러 간 친구네 집에서 탄생하는 것. 요컨대 시는 비(非)일상의 예술이고 산문은 일상의 예술이다. 따라서 좋아하는 시인이 생겼을 때 나는 그가 산문집을 낸 적이 있나 찾아본다. 그의 실험이 마음에 들었다면, 이제 그가 평소에는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ㅡ 그런데 이 시인, 좀 다르다. 그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따위가 어디 있느냐는 듯이, 그러니까 산문 쓰듯이 시를 쓰면 안 될 건 또 무엇이냐는 듯이, 쓴다. 시의 세계에 저렇게 편안한 복장으로 들어가는 법도 있는가. 그는 저 엄숙하고 삼엄한 실험실에 청바지에 반팔 티 차림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커피 한잔하며 노래를 듣고 한숨 자기도 한다. 그가 시에 있어 진지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진지함의 한 방식이 저렇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편 읽어 보자.


오십억 년이 지나면 해가 없어질 거라고 한다. 바로 말하자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부풀어올라 아주 큰 붉은 별이 되었다가는 다시 쪼그라들어 아주 작은 흰 별이 된 다음 결국 뜨거운 먼지로 우주에 흩어질 거라고 한다. 설사 지구가 녹아 사라지지 않고 더 뜨겁거나 차가워진 작은 태양을 여전히 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위에 산 것은 더 없을 거라고 한다. 그 막막한 세월에 나는 없을 것이니 그날을 걱정하는 일은 그야말로 기우라 비웃을 만한데, 나는 벌써 어둡고 답답하다. 그 소식을 들은 후 여러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

-116면, 「햇볕의 기한」 부분


ㅡ 어려운 말도 없고 난해한 수사도 없다. 그부터가 시를 편안하게 대하기 때문에, 그의 시를 읽는 우리도 함께 편안한 마음이 되고 만다. 마치 일기를 적듯 써 내려간 저 시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하려는 시인들의 그 숱한 고뇌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앞서 말한 대로 시가 언어의 실험실이라면 저마다의 시인들은 각자 아직 존재한 적 없는 문장을 가져야 하는 바, 따라서 그런 관점에서라면 저 시를 좋은 시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는 실험과 독창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진심의 소산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시 쓰는 일과 발명은 바로 이 점에서 차이가 난다. 내가 저 시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도 언어의 참신함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깃든 진심 때문이었다. 시인이 독창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별개로, 가끔 저렇게 언어가 한 사람의 진심을 보여 준다고 생각될 때, 시는 자못 감동적이다. 아직은 까마득하게 남았을 햇볕의 기한을 저토록 진심 어리게 근심하고 있는 그를, 나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ㅡ ‘발명’은 최초가 아닌 경우에는 붙일 수 없는 이름이지만, ‘시’는 최초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최선이기만 하다면 시라고 부를 수 있다. 이희중의 문장들은 분명 최초가 아니다. 시의 언어가 되기에 다소 평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진심이 있고 그 진심에 한해 그의 문장들은 최선이었으므로,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시가 된다. 또한 그 진심이라는 것 덕분에 그의 시가 풍기는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는 연구원의 태만이라기보다 하나의 미덕이라 생각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덕분에 그가 청바지에 반팔 티 차림으로 시의 실험실을 드나들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ㅡ 시인으로 등단한지 올해로 무려 35년째지만 시집은 세 권뿐이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진심만을 받아 적으려면 속도를 늦추어야 하기 때문이겠다. 어차피 평생 쓸 거라면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느긋하고 편안하게. 다시 말하지만 그에게는 진지함의 한 방식이 저렇게 나타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그의 ‘간지럼론’에 따르면 간지럼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가까운 느낌이 먼저 있어야”(「간지럼론」 중) 가능하다고 한다. 즉 애정이 있어야만 간지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를 간질일 수 없다지만 나를 간지럽힐 시를 읽을 수는 있다. 이제 나는 가장 간지러운 심정으로 그의 네 번째 시집을 기다린다.



07.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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