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다른 교육 훈련도 진행되었다. '구급법' 훈련이었다. '구급법' 훈련도 크게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 생활관 내에서 진행했다. 교관님께 전투용 지혈대를 배우고 서로 채워보고 스스로도 채워보고 업기법도 배워 2인 1조로 진행하였다. 이때는 1명씩 교관님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입대 전 내가 가장하기 싫었던 훈련 중에 하나가 '화생방' 훈련이다. CS가스를 마시기 싫었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은 코로나 19가 있기에 할 수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던 거 같다. 대신 우리는 방독면 착용 방법을 배웠고 9초 안에 착용해야 했기에 동기들끼리 서로 시간은 재주면서 연습을 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보호의 착용이었다. 겉으로는 그냥 구형 군복이었는데 입어보면 몸이 둔해진다. 그리고 정말 싫었던 것은 보호의 안에 석탄 같은 이상한 검은 가루가 손에도 묻고 얼마 입지 않은 새 전투복에도 묻어서 매우 찝찝했다. 게다가 착용법도 그냥 옷처럼 입는 것이 아니기에 반복적으로 연습을 해야 했고 평가를 보기 직전까지도 연습을 해야 했다. 보호의 착용의 경우에는 복도에서 평가를 봤는데 꽤 불합격자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다행히 통과를 했다. 근데 나중에 손을 보니 아주 검은색 가루로 물들여졌다.
이렇게 교육 훈련도 하고 동기들과 하루하루 보내는데 휴대폰도 없고 TV도 없어 밖에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사회 소식을 알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인터넷 편지였다. 인터넷 편지를 받아 읽고 있는데 동기인 홍석이가 삼성전사 주식이 10만 원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입대 전에 삼성전자 주식을 5만 원 대에 10개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때 내가 밖에 있었다면 바로 매도했을 텐데 휴대폰이 없어 매도하지 못해 한 숨을 푹 쉬었다. 결국 매도하지 못한 나는 10만 원을 찍고 다시 하향 그래프를 그리는 삼성전자 주식을 군생활 내내 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매도했다면 수익률이 거의 100%인데 아쉬움만 가득하다.
이렇게 인터넷 편지로나마 사회 소식을 조금 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답답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바보가 된 듯했다. 이러한 답답함에 취침 전에 군용 수첩에 글을 하나 작성했다.
2021년 1월 21일
군대에 입대한 지 10일째. 나는 지금 군당국의 방역지침에 따라서 2주 동안 격리를 하고 있다. 우리 생활관을 포함해 약 20개의 생활관이 우리와 같이 2주 동안 격리를 하고 있다. 격리를 하는지 몰랐던 나는 처음엔 놀랬지만 소대장님이 5주 훈련에 격리 2주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셔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물론 지내면서 격리의 의미가 있는지 매일 궁금증이 들기 하지만.
오늘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답답함 때문이다. 한동안 바깥 소식을 접할 수 없어 답답했던 나는 '소통'의 중요성을 느꼈다. 입대 전까지는 '소통'이라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입대 날에 부모님께 휴대폰을 맡길 때만 해도 "어차피 5주밖에 못 사용하는데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첫날이 지나고 2일 차에 바로 깨졌다. 분명 첫날에 생활관 친구들과 친해지고 다음 날에도 서로에 대해 많이 알려고 계속 말했는데 뭔가 부족했다. 바깥 사회 소식을 알 방법이 없던 것이다. 오늘은 코로나 19 확진자가 몇 명이 나왔는지, 오늘은 스포츠 경기가 어떻게 됐는지 등을 알지를 못했던 것이다. 입대 전에 평소에는 당연히 했던 것을 못하니까 답답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특히 나는 주요 관심사가 정치, 사회 분야라서 주로 휴대폰과 TV로 뉴스와 기사를 자주 봤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번에 입대를 해서 나는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특히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느꼈다. 지금 사회화의 소통과 단절되면서 내가 점점 무지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어 걱정되기도 한다. 그나마 동기들이 있어 괜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되긴 한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회와 소통을 하고 싶으며, 어쩌면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어떻게는 사회와 소통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격리가 풀리기 2~3일 전에 우리의 1차 자대 분류가 나왔다. 대부분 지금 속해있는 지역 방위 사단이거나 주변 다른 지역 방위 사단에 분류되었고 운전병들은 후반기 교육을 배치받았다. 근데 나는 150명 정도 되는 중대원 중 6~7명 정도만 배치된 부대로 분류가 됐다. 그래도 다행인 게 같은 생활관 동기인 동준이 형과 부대 분류가 같이 됐다는 것이다. 같이 가게 돼서 서로 다행이라며 정말 좋아했다. 한편으로는 어떤 부대인지 엄청 궁금했다. 이름에 통신이 있어서 통신병인가라는 생각에 약간 "어 이거 꿀일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배치받은 부대를 제외한 사단으로 배치받은 동기들은 부대가 어떤 부대인지 잘 알려져 있던 반면 나와 동준이 형이 배치받은 부대는 어떤 부대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몰랐다. 그래서 격리가 풀리고 신병교육 대대로 가서 전화가 가능하면 어떤 부대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벌써 격리가 풀리기 하루 전이 됐다. 우리는 다음 날 사단 훈련소인 신병교육 대대로 가기 위해 미리 짐을 쌌다. 더블백에 보급품들을 모두 꽉 넣고 관물대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한 시설인 생활관과 화장실 등을 대청소했다. 그렇게 하루가 다시 끝나가고 우리는 마지막 격리 날을 장난치면서 12시 넘어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