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내겐 오랜 친구이자 이야기가 있는 곳.
7~8년 전쯤 살던 집을 세 주고 이사를 오면서 인공 흙에 심어져 있던 관음죽과 영산홍은 그대로 두고 왔었다. 그러고 2년 후 집이 팔리면서 정리하러 가서 보니 세 들어 살던 이가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에도 굳건히 살아 있던 영산홍과 관음죽을 새 화분으로 옮겨 심고 데려왔다.
화분에 심어 데러 오니 멀리 떨어뜨려 뒀던 아이를 데리고 온 양 미안하고 애틋하고 잘 살아있음이 얼마나 고맙던지...
작년부터 지금까지 한 2여 년 동안은 바빠서 화단을 관리하고 챙겨줄 겨를이 없어 간간이 물만 주고 계란 껍데기만 빻아 뿌려주었다. 정글처럼 무성해만 가는 화단을 큰 맘먹고 정돈하며 날로 커져 가는 덩치를 비좁은 틈에서 버티는 관음죽이 안쓰러워 들어내 보니 이렇게 튼실하고 예쁘게 자라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만큼 훌쩍 자란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여 거실로 옮겨 놓고 보고 보고 또 쳐다본다.
그때 같이 왔던 영산홍은 어느 해 겨울인가 다음 해 예쁜 꽃을 보려고 겨우내 에어컨 외기 위에 내다 놓았었다. 바깥이라 비 오면 비 맞을 거라 여기고 물 주기를 소홀히 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잎들이 시들시들해지고 시름시름 말라가더니 다 떨어지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바깥이긴 해도 위층에도 외기를 놓는 곳이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를 가려준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짠하고 아린 마음을 달래며 영산홍을 베란다 안으로 들여놓고 다시 잎 돋기를 바라고 바라는 마음으로 물 주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톡 톡 새눈 같은 것이 돋더니 새잎이 돋아났다.
그때의 가슴 뭉클함이란....
그렇게 돋아난 잎들이 무성해지고 예쁜 꽃도 핀 영산홍은 실내에서 해를 넘기니 꽃을 못 보아 이 가을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내년 봄 예쁜 꽃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다육 친구들.
지인으로부터 하나씩 분양받아 키워 오는 다육들.
실내에서 키우면 키만 웃자라고 튼실하지 못해 겨울을 넘기면 에어컨 외기 위로 이사를 가는 다육들. 여름내 뜨거운 햇살에 따 글 따 글 익으면서 여물어진 다육들은 가을이 되면 한낮의 쨍쨍한 가을 햇살과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에 곱게 물들어 간다.
올 가을 그들은 또 어떤 빛깔로 예쁘게 물들어갈지 자뭇 기대된다.
산세베리아.
잎에서 음이온이 많이 나온다며 열풍을 일으키던 십여 년 전 집들이 선물로 들어온 뒤 여태껏 잘 살고 있는 산세베리아들... 다른 식물에 비해 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들었는데 수경재배로도 잘 자란다.
몇 해전 꽃이 두어 번 핀 이후론 꽃구경은 하지 못했다. 산세베리아 줄기들은 줄기를 잘라 잘린 부분이 시들도록 그대로 며칠 두었다가 물병에 꽂아두면 뿌리도 잘 내리고 새순도 잘 돋아난다.
마삭줄.
산기슭이나 도로변에도 잘 자라고 나무덩굴도 잘 타고 오르는 마삭줄.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발갛게 물들어 햇살에 윤기 나게 반짝거리면, 또한 찬바람 가을 햇살에 붉게 물들어 늦가을을 기다리게 하는 남천처럼 예쁘다.
담쟁이.
담쟁이넝쿨 뿌리를 몇 가닥 캐어서 화분에 심고 베란다 벽 쪽에 붙여두니 넝쿨이 벽을 타고 올랐다. 겨울이 되어 겨우내 잎은 다 떨어지고 줄기만 벽에 붙어 있다가 이른 봄이 되면 샛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그와 함께 봄날의 설렘이 시작되곤 했다.
고무나무.
공기정화 능력이 탁월한 식물 중 하나인 고무나무.
위로만 쭉쭉 커가는 것이 보기 싫어 가지치기를 해 가며 키우는 중인데... 올여름 더운 날씨에 바쁜 일상으로 물 주기를 깜빡했더니 애석하게도 긴 줄기 하나를 잃고 말았다.
고무나무 줄기는 가지 친 후 며칠 시들하게 말린 뒤 물에 꽂아 두면 아주 무성하게 뿌리를 내리며 새순도 내고 잘 자란다. 이때 화분으로 옮겨 심으면 역시 잘 자란다.
석란과 넉줄고사리.
조그만 석란이 감나무 토막 위에 자리 잡은 지 근 3년쯤 이제 제 자리를 잡은 듯 제법 뿌리도 내리고 무성해져서 넉줄고사리와 잘 어우러진다.
넉줄고사리는 내가 좋아하는 산야 초 중 하나이다.
특히 하얀 솜털 같은 뿌리줄기가 돌이나 나무 위에 뻗쳐 나가는 모양이 마음을 끈다.
단풍나무.
오랜 고목의 씨앗에서 자란 단풍나무를 화분에 옮겨와 심은지 근 20년쯤 된 아주 오래된 친구.
내게 아름다운 순환의 의미를 일깨워주기도 한 단풍나무는 새순이 돋을 땐 빨간색 그러다 잎이 다 돋고 나면 다시 초록으로 변했다가 가을이 되면 또다시 붉게 물이 든다. 그리고 잎이 떨어질 때쯤엔 이미 그 밑에 봉긋 다음 해의 새순이 자리 잡고 있다.
가고 나면 오는 것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니 가는 것이 있는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임을 생각하게 해 준 의미 있는 나무이다.
그 외에도 호야와 천양금 돌나물 블루베리 등...
한 때는 무성하고 예쁜 꽃도 피다가 지금은 잠시 주춤한 친구들.
이들도 때를 기다리고 자양분을 길러 무성하고 예쁜 꽃도 피고 열매도 맺기를 바란다.
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나무와 화초도 있고 아이들이 커 가는 중에 들어와서 같이 지내는 것들도 있는 나의 정원은, 물을 주고 가꾸고 돌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지며, 그들을 통해 자연의 이치나 섭리를 보고 느끼면서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삶의 자세를 자습도 하게 되는 내 마음의 힐링처이다.
고사리손 같던 울 아이들의 손이 어른 손이 되어 군엘 가고 사회초년생의 준비를 해 가는 세월 동안 나와 함께 지내오며 물을 주고 다듬는 동안 내 마음도 함께 정돈시켜 주고 다듬어주던 나의 오랜 친구들.
이 곳의 꽃과 나무가 언제나 푸르고 무성하며 밝은 햇살에 윤기 있게 빛나고 그들 나름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