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다
맥을 못 추게 뜨거웠다
찬바람 살살 불면서 그나마 기운이 좀 나는 걸 보면 그 뜨거움은 우선 기운부터 뺏어갔었나 보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 가던 여름은 넓은 호수도 초록으로 빼곡히 물들였었다
오가며 스쳐지나기만 하다가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초록의 호수를 담고 싶었다
이 여름이 가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저 호수의 초록들도 모두 자취를 감추고
차갑지만 맑은 물결로 찰랑거리겠지
한 여름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자연의 찬바람이
어느 날 문득 갑작스럽게 찾아와 버렸다
햇살이 없는 그늘에서 문득 스치는 찬 기온에
벌써 예감하는 겨울의 모습은
멈칫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렇게 세월이 가는구나
그 뜨겁던 여름도
이렇게 가는구나
여름은 염치없이 뜨겁기만 했을까
연초록의 어린 산딸나무 꽃을 키워 붉게 물들게 하고
마냥 어리고 가녀려 애처롭던 나락을 키워 알알이 열매 맺게 하고
감이며 밤이며 작은 열매들을 맺어 영글게 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 여름은 모든 식물의 생장에 기여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눈총을 받으며 뜨겁던 여름이
씁쓸히 사라져 가면서도 기꺼이 남겨 놓은 열매들은
이제 가을이 받아
더욱 단단하고 맛나게 물들이고 맛 들여 갈 것이다
모든 것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