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 엄마와 크리스틴의 로맨스 영화
어떤 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 줄줄 흐르게 만드는 뻔한 사운드와 눈물씬이 있는 것도 아 닌데 옆집 혹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소박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지난날의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프란시스 하>로도 이미 이름을 알린 그레타 거윅 감독은 최근 <작은 아씨들>에서 또 한 번 여성 서사 중심으로 성장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그 중 <레이디 버드>는 10대 소녀에 초점을 맞춘 또한 모녀 관계가 핵심을 이루는 명확한 성장 영화의 구조를 띄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10대 소녀의 성장 영화에서 나오는 로맨스와는 조금 다른 로맨스를 전개해 나간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자신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화려한 뉴욕으로 가고 싶어 한다. 새크라멘토와 뉴욕을 시작으로 대조적인 메타포의 향연이 시작되는데 그 중 또 하나가 진짜 이름 ‘크리스틴’과 부여한 이름 ‘레이디 버드’이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 보이지만 자기 자신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 훨씬 멋져 보이는 새로운 자아를 부여한 것이다. 크리스틴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본연의 자신)과 자신이 닮고 싶은 이상 향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한다. 보수적이고 뮤지컬을 좋아하고 가족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데니와 개방적인 데다 록 음악을 좋아하며 시크한 매력으로 가득 찬 카일, 싸웠을 때 서로의 엄마 얘기를 꺼내며 공격할 정도로 친한 줄리와 광나는 타고난 피부부터 교복 입는 스타일까지 닮고 싶은 모습이 가득 한 제나까지 크리스틴을 둘러싼 모든 것을 사이에서 크리스틴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이러한 크리스틴에게 갈등의 기준을 알게 해주는 존재이자 크리스틴을 새크라멘토의 메타포로 만드는 존재는 바로 엄마이다. 크리스틴에게 새크라멘토가 있다면 엄마에겐 크리스틴이 있다. 사랑하는 거 말고 좋아하냐는 크리스틴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엄마지만, 새크라멘토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그 미 움을 드러낼 때 애정이 보이는 크리스틴과 둘은 너무 닮아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 감독은 크리스틴이 선생님에게 하는 장난을 통해서도 ‘관심’에 대해 보여준다. 제나와 친해지기 위해 선생님을 골탕 먹일 작당모의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차를 긁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손으로 붙인 ‘방금 하나님과 결혼했어요’는 그 선생님에 대해 알지 못하면 먹히지 않는 장난이다. 게다가 그 장난에 선생님은 재치 있는 발상이라며 오히려 좋아한다. 꾸며 낸다 한들 크리스틴의 본성은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 주체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관계는 크리스틴과 엄마와의 대부분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둘은 끊임없이 티격태격대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은 곳(예쁜 원피스)을 바라본다. 또한 데니를 포용하는 크리스틴과 신부님을 이야기를 공감하는 엄마의 모습을 곧바로 붙임으로써 둘의 관계성을 확립시킨다.
새크라멘토는 크리스틴에게 애정의 대상이자 관심의 대상이다. 새크라멘토와 크리스틴의 학교의 질 박함엔 크리스틴을 향한 엄마의 마음도 묻어있다. 영화는 9/11 테러가 일어난 1년 뒤인 2002년을 배경으로 한다. 테러, 위협에 대해 가장 예민해진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다른 공립이 아닌 크리스틴을 보호하려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크리스틴은 새크라멘토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독 은 그런 새크라멘토의 전경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카일과의 헤어진 후 줄리와 화해하는 둘의 뒤로 보이는 노을 낀 다리는 새크라멘토의 비경을 자랑한다. 영화 초반부에서 엄마의 시선으로 보여준 드라이빙 샷의 새크라멘토와 후반부에서 크리스틴의 시선으로 보여준 드라이빙 샷의 새크라멘토는 도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어디보다 따스한 햇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크리스틴이 관객에게 보여준 새크라멘토는 감독이 보여주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크리스틴을 사랑스럽게 담아낸 것과 같다.
좋아하는 남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쓰던 벽지를 하얀 페인트로 칠해버린다. 크리스틴의 삶에 이성과의 로맨스가 있기는 하지만 그 로맨스 자체가 크리스틴의 존재 가치를 부여해 주지는 못 한다. 크리스틴의 절친인 줄리가 누구냐고 두 번이나 묻는 카일과 대학 결과를 함께 궁금해 하는 데니 중, 크리스틴 옆에 남 은 사람이 데니인 것은 당연한 결과이자 ‘관심’에 대해 보여주는 또 다른 감독의 방식이다. 우리는 때로 자신조차 속인다. 사랑하고 아끼지만 익숙함에 소중함을 잊고는 다른 곳을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를 보 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매력적인 일인지, 구질구질하고 지겹고 화려하지 않지만 너무나 소중한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끔 한다. 크리스틴이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말할 때 정작 본인 외에는 이상한 이름이라고들 생각한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의 간극 속에서 본인이 지향하는 모습을 향해 꿋꿋하게 가는 크리스틴의 모습에 관객은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수많은 성장 이야기를 담아온 영화의 역사 속에서 이토록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하여 이상적인 대상화가 아닌 있는 그대로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가 없었기에 우리는 이 영화에 이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진 출처 A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