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맨’이 쓴 글입니다.
테슬라 모델Y를 주문한 건,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했던 7월 11일 일요일 저녁이었다. 약간의 충동구매였다.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날이었는데, 그럴 만한 일이 생겼다.
4살 아이랑 집에만 있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일요일 오후 우리 부부는 근처 대형마트로 놀러 갔다. 할 일 없을 때 종종 나들이 가는 곳이다. 그런데 마침 우리 차의 브레이크가 삐걱삐걱하던 게 생각났다. 대형마트 주차장에 정비소가 있다. 브레이크도 살펴보고 엔진오일도 갈아야 한다. 차 정비하는 동안 1시간 정도 아이랑 놀다 오면 딱이겠다고 생각하고 마트로 향했다.
“음, 브레이크를 4쪽 다 연마를 했고 브레이크 패드도 갈았어요. 그런데 뒤쪽엔 캘리퍼를 교체해야겠는데요?”
정비 1시간이 지난 뒤 온 전화.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이거이거 저거저거 하면 총 60만 원입니다.”
“(흠칫 놀랐지만 태연한 목소리로) 아 그렇군요...”
“정비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제가 내일 차를 타고 출근을 하려고 했거든요.”
“오늘은 일요일이라 부품이 없어서 내일이 돼야 부품이 올 것 같아요. 일단 패드도 갈고 했는데 캘리퍼 갈기 전에 또 브레이크를 쓰면 손해니까 내일까진 차를 여기다 두시죠.”
그러고 보니 출근이 문제가 아니었다. 차가 없이 집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이는 1시간 동안 키즈 카페에서 열심히 뛰고 왔고, 와이프 손에는 간단하게 장 본 장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집까지 거리는 1.5km 정도. 택시는? 여기 김포는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다. 1.5km 거리로 아무리 택시 앱을 켜도 수락이 되지 않는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칭얼대는 아이는 내가 안고 장바구니는 와이프가 들고 걸어가기로 했다.
17kg. 얼마 전 병원에서 잰 아이의 몸무게였다. 언제 이렇게 많이 컸니? 당시 아들은 33개월 차. 이제까지 별 탈 없이 잘 커줘서 정말 대견하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무겁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너… 언제 이렇게 무거워진 거야?
와이프 얼굴을 힐끗 보니 얼굴에 짜증이 역력하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똥차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우리가 타는 차는 흰색 투싼. 결혼 전에 첫차로 구입한 중고차다. 전 주인이 깨끗하게 탔고 나름 ‘풀옵션’이라 이제까진 별 불만 없이 타 왔다. 하지만 가끔씩 정비할 일이 있을 때 짜증이 확 밀려오긴 한다. 지금처럼 바퀴 네 짝의 브레이크를 다 갈아야 하는 상황이 올 때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테슬라는 회생 제동 때문에 브레이크 패드 갈 일이 거의 없다던데… 엔진오일도, 미션오일도 그렇다. 왜 이런 걸 매번 갈아줘야 하는 걸까.
집에 도착했다. 세 사람 모두 땀범벅이다. 금세 샤워를 하고 식탁 테이블에 앉았다. 더위를 식힌다.
잠시,
현타가 온다.
그리고 말없이 테슬라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날 난, 내 생애 가장 비싼 충동구매를 했다.
시간이 흘러 10월이 됐고, 11월엔 많은 모델Y 물량이 한국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이 됐다. 나도 내 차를 받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그 일이 일어났다. 뚜둥, VIN이 뜬 것이다!
VIN: Vehicle Identification Number. 개별 차에 붙는 고유 등록 번호.
사실 저 VIN은 테슬라 공식 홈페이지에서 뜬 건 아니었다. VIN 추적기라는 비공식 어플을 사용하면 내 테슬라 차량 예약번호와 VIN이 매칭 돼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내 테슬라 계정 페이지에서도 ‘2021 Tesla Model Y’라고 2021년도 숫자가 붙은 것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내게도 테슬라가 오는구나 싶어 쿵쾅쿵쾅거렸다.
그때부터 테슬라 카페에 매일 들락날락했다. 테슬라 카페엔, 차량이 미국 샌프란 항구에 모여있는지, 배에 차들이 실렸는지, 그 배가 어떤 항로와 일정으로 한국에 오는지를 위성사진과 선박 추적 어플을 사용해 알려주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내 차는 어떤 배에 언제쯤 실릴지를 매일 들여다봤다. 마치 뱃속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는 기분이랄까. (우리의 모델Y는 이름도 미리 지어놨고, 심지어 태명도 있었다.ㅋㅋㅋㅋ)
전기차 보조금 지급 현황을 볼 수 있는 사이트(E-SeSang.com)에도 하루에 한두 번씩은 출첵을 했다. ‘좋아, 김포는 아직 잔여 대수가 많군.’ 보조금을 받아 11월에 출고할 수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테슬라 오너라면 차를 맞을 준비도 꼼꼼하게 해야 한다. 알리에서 미리 테슬라 액세서리를 주문해뒀다. 센터 콘솔의 파티션들과 컵홀더, 그리고 트렁크의 수납공간을 분리해주는 파티션, 뒷좌석에서 애꿎은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버클 등이었다. 사야 할 것들이 많음에 즐거워하며 유튜브와 알리를 번갈아 꼼꼼하게 쇼핑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모델Y 인도는 내년으로 연기됐다. 이유는 허무하게도 김포시의 보조금이 다 소진됐기 때문인데, 이건 e-SeSang에서 보는 현황과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10월까지만 해도 잔여 보조금이 있었는데 하도 인도 연락이 오질 않아 테슬라 고객센터와 직접 통화를 한 끝에 김포시 보조금은 이미 다 떨어졌다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고객님은 설문 조사에서 보조금이 소진됐을 시 (리스나 그냥 구입 등)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겠다고 답을 하셔서 연락을 못 받으신 거예요”
수화기 너머의 상담원의 목소리가 왠지 더 까칠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보조금을 받지 않고는 급하게 인도할 이유가 딱히 없어 모델Y 설문조사에도 그렇게 답했는데 그래서인지 테슬라 코리아에서도 별다른 안내가 없이 이번 분기 인도가 밀린 것이었다. 흑…
몇 분 간 허탈함이 밀려왔다. 내 차(였던 차)가 멀리서 배를 타고 건너오는데 내 것이 아니었다니… (♪ 박진영 - 니가 사는 그 집) 테슬라 카페엔 인도 연락을 받았다는 글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내 꺼였던 너도 저 중에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얼른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그래, 아직 내 투싼이를 떠나보낼 때가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내년 봄에(아마 3월?) 봄 같은 따뜻한 심정으로 모델Y를 맞이하라는 것이리라.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알리에서 산 아이템들은 속속 도착했고, 난 고이 상자에 넣어 창고에 넣어두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으니 시간은 잘 흘렀다. 벌써 2021년의 끝자락이고 그간 여러 일들이 있었다.
첫 번째, 차를 받으면 들어갔어야 할 돈을 일단 테슬라 주식에 넣어뒀는데 '천이백슬라'가 됐다. 지금은 잠시 또 내려왔지만 그래도 인도 연기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는 수익권이다.
두 번째, 모델Y의 값이 올랐다. 자그마치 990만 원. 내가 주문할 때 6999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7989만 원. 예약 버튼을 누른 것만으로 앉아서 천만 원 가까이 벌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조금은 옅어진다.
세 번째, 테슬라 차량과 FSD가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어 간다. 이러한 상황을 직접 겪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내가 받을 때쯤이면 더 좋은 성능의 소프트웨어로 재밌게 운전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된다.
기왕 6개월 기다린 거, 즐겁게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