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일 차, 카파도키아 – 안탈리아
가이드는 여행 첫날부터 틈만 나면 “카파도키아 열기구를 타려면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만큼 바람과 날씨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는 뜻이었다. 혹여 카파도키아에서 실패해도 파묵칼레에서 다시 시도할 수 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지만, 마음 한편엔 ‘그래도 카파도키아에서 타야 제맛이지’ 하는 기대가 컸다. 백두산 천지나 독도를 보기 위해서도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자연 앞에서 인간의 운이 얼마나 덧없는지 새삼 느꼈다.
새벽 6시에 호텔을 나서니 아직 세상은 캄캄했고 공기는 차가웠다. 털모자와 목도리에 핫팩까지 챙기면서 추위에 대비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바람이 잔잔해 열기구가 뜰 것 같다는 가이드의 말에 일행은 서서히 들뜬 표정을 지었다. 열기구 회사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30분 남짓 이동하자 어둠 속 들판에 거대한 천막처럼 누워 있는 열기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원들이 바람을 불어넣자 천천히 숨을 들이켜듯 부풀어 오르더니, 어느새 괴물 같은 덩치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규모에 압도돼 바라보는데, 바구니가 세워지고 탑승하라는 안내가 들렸다.
바구니는 여덟 칸으로 나뉘어 있고,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도록 한 칸에 3~ 4명이 들어가게 배치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려고 일부러 떨어져 타는 가족들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같은 칸에 몸을 실었다. 며칠 사이 ‘작가’라는 별명을 얻게 된 동행 한 사람이 같은 칸에 있었는데, 다른 이들의 사진까지 꼼꼼하게 찍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꽃이 치솟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열기구가 서서히 떠올랐다. 생각보다 오르는 속도가 빨랐다. 발밑의 땅이 순식간에 멀어지며 사람들은 개미처럼 작아졌다. 자동차도 장난감처럼 보였다. 어느새 우리는 평원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새 떼의 한 마리가 되어 있었다. 하루에 한 번 70개에서 많게는 100개의 열기구가 동시에 떠오른다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열기구마다 적힌 글자를 살펴보니 대부분 벌룬 회사 이름이었고, 한자 표기가 많은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 회사 이름도 하나 보였다. 누군가 “만약 아미 광고가 있다면 전 세계에서 더 몰려올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열기구는 평원을 날다가 어느 순간 계곡 가까이 내려가기도 했다. 손만 뻗으면 바위의 거친 결이 닿을 듯했다. 계곡의 공기는 차가웠고,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사이 어둠 아래로 햇빛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맞은편 능선 위에 솟은 산 정상 뒤에서 금빛 동그라미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내는데, 햇무리와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은은한 빛이 장관을 만들었다. 그 한복판에 선명하게 떠 있는 열기구 한 대가 고독한 주인공처럼 존재감을 뽐냈다. 한 시간가량 하늘을 떠다니는 동안 열기구의 수를 세어보니 얼추 140개가 넘었다. 문득 머릿속으로 계산이 시작됐다. 열기구 하나에 28명, 1인당 320유로…. 어림짐작으로도 20억 원이 넘었다. 관광 산업이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는지 실감했다.
우리는 열기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셀주크 제국의 수도였던 콘야를 거쳐 안탈리아로 향했다. 버스는 카파도키아를 벗어나며 두 시간 넘게 달렸다. 가이드는 오늘따라 쉬지 않고 실크로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아시아의 시작은 중국이라고 알고 있던 내 생각과는 달리, 우리나라 경주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버스가 달리는 길이 과거 상인들이 생사를 걸고 오갔던 길이었다니 낯선 풍경 속에서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차창 밖의 풍경은 단조롭고 조용한 시골이었다. 벽이 무너지고 지붕도 사라진 폐건물들이 흉물처럼 서 있었지만, 한때 누군가의 꿈과 희망이 깃들어 있었을 터였다. 그런 건물들 사이로 가끔 정리 잘 된 번듯한 건물이 보이면 공공기관인가 싶었는데, 가이드는 그것이 바로 ‘카라반 사라이’라고 했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40km마다 쉬어가던 일종의 성이자 숙소라 했다. 사막 한복판에서 어렵게 만나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길이 곧 그 옛길이었으니, 이 먼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교역과 교류가 오갔을지 상상만 해도 아득했다.
잠시 후 버스가 멈춰 선 곳이 콘야의 ‘술탄 하니 카라반 사라이’였다. 겉모습은 정제된 대칭의 아름다움을 갖춘 성채 같았다. 1229년에 지어진 곳으로 이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했는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묵직한 세월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안쪽 기둥마다 오래된 카펫이 걸려 있고, 벽면 곳곳에는 일본풍 그림이 장식돼 있어 작은 미술관 같았다. 천장에는 비둘기가 떼 지어 날아다녔는데 아마도 집을 지어놓았을 법했다. 출입문 근처 카페에서 아내와 마주 앉아 홍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골랐다. 상인들이 겪었을 긴 여정과 낯선 땅에서의 두려움, 그리고 이곳에서 맛보았을 잠깐의 안도감을 떠올려 보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콘야를 지나가기 전에 점심을 해결했다. 주 경계 검문을 거쳐 토로스 산맥 터널을 지나자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삭막했던 시야에 드디어 산, 나무, 단풍이 보이자 마치 오랜만에 익숙한 세계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탈리아 도심에 들어서니 교통체증이 심했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