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로 떠난 일주일 6

안탈리아에서 파묵칼레로

by 백승인

오늘은 오전에 안탈리아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파묵칼레로 이동해 히에라폴리스와 석회봉을 찾는 일정이다. 고대 페르가몬 왕 아탈로스 2세가 자신의 이름을 따 ‘아딸레이아’라고 불렀던 도시가 오늘날의 안탈리아다. 휴양지답게 공기부터 여유롭고, 바다는 햇빛을 머금어 은빛과 청록을 오갔다. 튀르키예에서 이스탄불 다음으로 많은 여행객이 찾는 도시라 하는데, 자연·역사·체험을 모두 품고 있으면서도 물가까지 저렴하니 여행자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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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중 작은 소동이 있었다. 내가 비운 접시를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직원이 치우다가 그릇을 떨어뜨린 것이다. 놀란 표정으로 뭐라고 말했지만 알아듣지 못해 웃으며 함께 주워 담는데, 그 직원이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말했다.
“너, 괜찮아?”
뜻밖의 한국어, 그것도 다소 엉뚱한 반말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먼 타지에서 들은 우리말이 묘하게 따뜻했다.
“응, 나 괜찮아.”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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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리아 구항구에서 유람선을 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정박해 있는 요트는 한 척뿐이었고, 바다에는 우리 배만 떠 있었다. 일행은 음악에 맞춰 어깨춤을 추고 사진을 찍으며 여행의 흥을 만끽했다. 아내와 나는 다소 떨어진 자리에서 해안을 바라보았다. 멀리 솟은 산맥 사이 한 봉우리를 가리키며 가이드는 그것이 ‘올림포스 산’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그리스에 있는 줄 알았던 산이 이곳에 있다니,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새삼 여기저기 겹쳐 보였다. 신화를 다시 읽는다면 이 땅의 풍경이 한층 더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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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내리고 쉐자드 코르쿠트 모스크,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지나 자유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여행안내 책자를 참고해 1373년에 지어진 이블리 미나레 모스크를 찾아갔다. 여섯 개의 돔 아래 독립된 38m 높이의 미나렛은 안탈리아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햇살 아래 우뚝 선 모습이 도시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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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엔 절벽 위의 쇼비뇽 레스토랑에서 도미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12시에 파묵칼레로 출발했다. 길가에는 이동식 천막 ‘게르’가 간혹 보였다. 튀르키예의 원류가 돌궐족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초승달 붉은 국기와 아타튀르크 초상은 어딜 가나 흔하게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시절 위인전에서 만났던 그가 지금 시대에서 보면 이승만·박정희·김대중을 합쳐 놓은 듯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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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시간 뒤 도착한 히에라폴리스는 고대 온천 도시였다. 클레오파트라도 찾았다는 이곳은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지금은 자연유산·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남문으로 들어가 카트를 타고 네크로폴리스를 지나 아고라를 거쳐 고대 극장으로 향했다.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네크로폴리스는 고요했지만, 한편으론 웨딩 촬영 중인 신혼부부가 찍히기도 하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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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극장은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만하지 않은 경사 때문에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단 높이가 절반가량 낮은 통로가 있어 이동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무대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객석 중간 부분까지 내려가보았다.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출입문과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오늘날 경기장 구조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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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 솔레 미오’. 관리 측에서 흘려보내는 배경음악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노래의 주인공은 객석 중간에 서 있는 남자, 우리 일행 중 초등학생 딸과 여행하던 아빠였다. 고대 극장에서 생생한 성악을 듣는 순간이라니. 객석 전체에서 박수가 터졌다. 처음엔 ‘딸을 잘 챙기지 않네’라며 가이드 보조 같은 느낌을 받았던 그였는데, 그의 목소리 한 번에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순간 그의 노래는 그 어떤 성악가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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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전 우리는 파묵칼레의 석회 테라스로 향했다. 옥빛의 계단식 지형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구 근처에서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걸으며 온천물에 발을 담그니, 어느새 하늘은 어둑해져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남문으로 나와 호텔행 버스에 올랐다.


오늘 묵을 호텔은 온천 수영장을 갖춘 리조트였다. 아내는 이곳 수영장을 꼭 이용하겠다며 새 수영복까지 챙겨 왔지만, 저녁 식사 후 보니 날씨가 쌀쌀해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함께 하자고 하던 일행도 모두 포기했다는 말을 듣자 결국 아내도 수영복을 펼쳐보지 않았다. 그래도 아쉬움보다는 오늘 하루 동안의 감동이 더 오래 남아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