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부터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이틀, 손주와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린이집이 끝나길 기다려 아이를 데리고 와 우리 집에서 세 시간 남짓을 함께 보낸다. 간식과 저녁을 먹고, 숨바꼭질을 하다가 동화책을 읽고, 장난감 놀이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유튜브 영상 앞에 나란히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공간 전체가 자연스럽게 아이의 웃음으로 채워진다.
26개월 된 손주가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깜짝 놀란다. 아이가 구사하는 단어와 표현을 듣고 있노라면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싶을 때가 많다. 감정 표현이 섬세하고, 상황을 읽는 공감 능력도 있다. 어느 날은 제 아빠 차를 타러 내 품에 안겨 이동하던 중, 나를 빤히 바라보며 “할아버지, 멋있어.”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누가 나를 그렇게 바라봐 줄까 싶어, 그 말 한마디가 가슴 깊이 오래 남았다.
며칠 전에는 “할아버지, 사진 찍어요. 브이.” 하며 손가락 두 개를 번쩍 펼쳐 보였다. 이틀 전에는 장난감 트럭을 가지고 놀다가 “잠깐만, 필요한 게 있어요.”라고 말하더니 거침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화장대를 기웃거렸다. 견본 화장품 두 개를 건네주자, 그것을 장난감 트럭의 짐칸에 올려놓고 다시 놀이에 몰두했다.
우리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좋은 모양이다. 어느 날은 아빠가 데리러 왔는데도 평소와 달리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여기서 잘 거야.”라는 말까지 하는 통에, 결국 비장의 수단인 젤리 한 봉지를 꺼내 ‘뇌물’을 먹이고서야 돌려보낼 수 있었다.
아내는 손주를 늘 안아주고 싶어 한다. 손주만 보면 두 팔이 저절로 벌어진다. 손주가 제법 커서 아내가 손주를 안는 것이 다소 힘겨울 것이라 생각한 나는 그런 아내를 말리느라 한 발 앞서 손주에게 다가가 안아 들곤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를 안아주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정작 아이를 두고 아내와 나 사이에 때아닌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며칠 전 오후에도, 아내는 어린이집을 나서는 손주를 보자마자 안아 들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들고 있던 어린이집 가방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립도서관에 들러 반납 기한이 된 책을 돌려주고 새 책을 빌리느라 가방이 하나 늘었다.
집에 도착해 차를 세우자, 이번에는 내가 손주를 안겠다고 아내에게 다짐을 받아냈다. 아내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짐은 아내의 몫이 되었다. 아내는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에 손주의 어린이집 가방, 도서관 책가방까지 더해 양손에 가방 세 개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손주가 말했다.
“할머니, 너무 무거워.”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는데, 50대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함께 올라탔다. 나는 손주가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한 마음이 들어 물었다.
“할머니가 무거우니까 ○○가 들어줄 거야?”
손주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응”이라고 대답하더니, 내 품에 안긴 채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아내의 가방 손잡이를 꼭 잡았다. 아이 손이 힘들까 봐 나도 한 손으로 손잡이를 받쳤다. 돌아보며 환하게 웃은 아내 역시 손을 놓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 함께 있던 여성이 “아기가 참 기특하네.”라며 미소를 지었다.
집에 들어온 후 아내와 나는 교대로 아이와 함께 거실에 펼쳐 둔 인디언 천막 안에 비집고 들어가 앉기도 하고, 안방 커튼 뒤에 숨어 있는 아이를 찾는 술래잡기를 했다.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도마뱀 놀이를 하고, 안방에서 거실, 주방까지 집 안을 누비며 좀비 놀이를 하다 깔깔 웃었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나서 아이는 퇴근한 아빠를 따라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떠나고 난 뒤 고요해진 집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손주를 위해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손주가 우리와 함께 웃고 함께 자라는 시간을 선물해 주고 있다는 것을. 오늘의 이 평범한 저녁들이 훗날에도 오래도록 마음을 데워 줄 기억으로 남으리라는 것도. 그리고 아이가 자라 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이 시간 속에서 충분히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