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로 떠난 일주일 8

마니사에서 이스탄불로

by 백승인

마니사를 떠나 부르사로 향하는 길은 약 네 시간. 오스만 제국의 첫 수도였던 도시답게 부르사는 도착하는 순간부터 ‘역사’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톱하네 공원에서는 초대 군주 오스만 가지와 그의 아들 오르한 가지의 영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 왕릉의 규모에 익숙한 내게는 오히려 담백한 크기였다. 영묘 앞에서 옛 병사 복장을 한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은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공원을 나서려던 찰나, 가이드가 우리 부부를 재촉했다. 맞은편 약국에 ‘탈모 샴푸’가 유명하다며 안내한 것이다. 이미 일행 대부분이 줄을 서 있었고, 분위기에 떠밀려 나도 두 세트를 샀다. 여행지에서는 샴푸 하나도 기념품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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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찾은 ‘파노라마 1326 부르사 정복 박물관’은 실제 전투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곳이었다. 360도로 펼쳐지는 전경 앞에서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들이 신나게 뛰어다녔고, 그중 한 아이가 나를 보며 “곤니찌와!” 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웃으며 “노, 안녕하세요”라고 가르쳐 주었고, 아이도 따라 하며 환하게 웃었다.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짧은 인연은 의외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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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이스켄데르 케밥’의 원조 식당. 실내가 꽉 차 테라스에 앉게 됐는데, 덕분에 화덕 옆에서 고기를 써는 장면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주방장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칼을 천천히 갈아 고기를 얇게 잘라냈다. 식전 빵조차 맛있어 케밥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이스탄불로 향했다. 어제까지 달리던 국도와는 달리 오늘의 도로는 넓고 매끈한 고속도로였다. 두 시간 가까이 달리자 처음 발을 디뎠던 도시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지도상으로 보면 일주일 동안 이동한 거리는 튀르키예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이 나라의 크기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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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돌마바흐체 궁전. 바다를 메워 만든 정원 위에 세운 궁전답게 서양식 건축과 튀르키예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4.5톤짜리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연회장은 한 시대의 화려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붙잡은 것은 나폴레옹을 그린 그림. 우리가 아는 위풍당당한 모습과 달리 다소 현실적이고 투박해, 영웅조차 인간적일 수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어 블루 모스크를 찾았다. 푸른 타일과 둥근 돔, 기도하는 사람들, 관광객들… 서로 다른 움직임이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히포드롬이 펼쳐졌고, 오랜 시간의 흔적이 층층이 쌓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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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9층 루프탑 식당에서 먹었다. 블루 모스크와 하기아 소피아가 한눈에 담겼지만 닭가슴살은 다소 퍽퍽했다. 사람들은 음식보다 풍경을 더 아끼는 눈치였다.


숙소는 쉐라톤. 여행 마지막에 작은 호사를 누린 셈이다. 내일이면 귀국이다. 떠날 때는 길어 보이던 여행이 돌아올 때가 되면 언제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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