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주식을 하는 세상, 나는 늘 밖에 있었다.
내가 ‘주식’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교과서에 기재된 ‘회사’ 덕분이다. 회사에는 ‘합명, 합자, 유한, 주식’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인데 다만 시험에 나올 정도로 중요한 용어가 아닐뿐더러, 주식은 나의 삶과는 어떤 연관도 없었다. 그런 주식에 ‘투자’한다는 말을 처음 들려준 사람은 담임선생님 대신 보강수업에 들어온 체육주임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자신이 감독을 맡은 배구부를 잠깐 언급하고 이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는데, 뜬금없는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는 누구나 주식에 투자하는 세상이 올 거야. 너희도 관심 가져라.”
그 말이 왜 그렇게 낯설고 신기하게 들렸을까. 선생님 신분으로 주식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의아했다. 내 삶과는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더욱이 ‘누구나’라는 말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비롯해 내 주변의 어떤 어른으로부터 주식을 사고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주식이 요행에 기대어 한탕을 꿈꾸는 복권이자 더 나아가 도박에 가까운 투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1989년, 직장 초년생 시절, 한전 공모주를 신청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동료의 권유에 별 고민 없이 신청했다.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다기에 주식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과는 100% 남짓한 수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얻게 된 그 ‘공돈’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었기에 기쁨은 짧았고, 그 기쁨이 투자라는 연속 행위로 이어지지 않았다. 스쳐 지나간 우연한 사건일 뿐이었다.
1997년, IMF 사태가 닥쳤다. 구조조정이 일상어가 되었고, 부부 직원 중 한 명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다행히 직원 중 누구도 강제 퇴직을 당한 사람은 없지만, 정원 축소로 이후 3년가량 신규 채용이 중단됐다. 그나마 졸지에 직업을 잃게 된 금융기관이나 사기업 임직원과 비교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안도감 속에서 힘든 시간을 견뎠다. 그 시기에 주식시장이 폭락했다가 폭등했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후 직장에는 전설 같은 소문이 돌았다. 한 동료가 투자한 주식이 6개월 만에 150배 폭등한 종목이라 억대 수익을 냈다느니, 주식으로 번 돈으로 빚을 갚고 아파트 평수를 늘렸다느니 하는 이야기들. 사람들은 그때를 ‘IT 버블’이라 불렀지만, 내게는 그저 로또 당첨 소식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어떤 이에게는 주식이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저 먼발치에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2002년 무렵에는 작은 소동도 있었다. 다른 기관에서 옮겨 온 직원이 이른바 ‘강남 큰손’과 연결된 주식 전문가라고 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동료 중 돈을 맡긴 사람이 수익 난 걸 보고, 결국 서른 명이 넘는 이들이 수천만 원씩 투자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명백한 사기였다. 그는 수사 직전 자취를 감췄고, 나중에 알고 보니 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금전적 손실에 더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감사부서에 불려 다녔고, ‘품위 손상’이라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조직의 질서를 흩뜨린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나는 그 무리에 끼지 않았다.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보다 먼저 든 생각은 따로 있다. ‘나에게 돈을 벌 기회가 오는 일은 없다.’ 그것은 체념인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믿음이었다. 돌이켜보면 근거 없는 믿음도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보물 찾기를 하더라도 ‘보물’을 찾아본 적이 없고, 경품이 많이 내걸린 직장 체육대회 추첨에서도 늘 빈손이었다. 나에게 행운이란 남의 이야기였다.
주식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가 주식을 처음 만난 건 2014년으로, 주식을 하던 선배의 권유 때문이다.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증권사를 찾았을 때, 혹시 누가 볼까 염려스러워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내가 그곳에 감히 발을 들여도 되는지 망설였다. 증권사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전광판의 숫자와 색깔이 낯설었지만, 계좌 개설은 간단했다. 신분증과 도장만 있으면 됐다. 선배가 찍어준 종목으로 10% 남짓 수익을 냈을 때, 잠시 ‘부자가 되는 게 참 쉽다’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식은 초보에게만 잠시 친절할 뿐이다. 곧바로 이어진 손실로 수익을 반납하자 나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어쩌면 그때 나는 주식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행운을 잡을 수 있는 나 자신을 믿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여전히 주식이 투기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무지였다. 어설픈 직업윤리에 갇혀 ‘직장 이외의 돈벌이를 할 수 없다’라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었다. 체육 선생님이 말하던 ‘누구나’라는 범주에 나 자신을 넣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주식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