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작은 일탈에서 비롯된
인생의 흐름

by 백승인

어린 시절, 성당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머니가 심하게 아프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고 무당을 불러 굿을 했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웃 아주머니 한 분이 성당 신부님을 모셔왔고, 신부님이 다녀가신 후 어머니의 병세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가족은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 구역장까지 맡으셨다.

일요일이 되면 아이들은 아침 9시 미사에, 어른들은 11시 미사에 참석했다. 한동안 별문제 없이 잘 다녔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미사가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졌다. 나는 성당에 가는 대신 아버지가 주신 헌금으로 만화 가게에 가자는 유혹에 빠져 동생을 설득했다. 두 살 어린 동생은 망설였지만, 끝내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만화 가게에 갔다가 미사가 끝날 시간에 맞춰 동생과 합류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동생도 결국 만화 가게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어느 날 평소처럼 미사가 끝날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날 아버지는 9시 미사에 참석했다가 우리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셨다. 우리 집은 대문에서 계단을 내려간 뒤 5미터쯤 더 걸어 들어가 오른쪽으로 돌아야 앞마당이 나오는 구조였다. 동생이 먼저 앞장서고, 내가 서너 걸음 뒤에서 따라 들어가고 있었는데, 동생이 앞마당으로 돌아선 순간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버지를 보지도 않은 채 소리만 듣고 그대로 도망쳤다. 겁이 나서 밖을 떠돌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 집으로 갔을 때, 다행히 아버지의 화는 이미 풀려 있었다. 아마도 동생이 오롯이 그 화를 다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동생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얄미웠을까 싶다.

그날 이후 동생은 미사를 빠지지 않았고, 어린 나이에도 복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 고등학생 때는 ㅇㅇ시 가톨릭 고등학교 연합회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원에 들어갔고,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후 수사 신부가 되었다. 반면 나는 신앙에서 점점 멀어졌고, 지금은 신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냉담자가 되었다.


가끔 그 시절을 돌아보면, 어린 날의 작은 일탈이 동생에게는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고, 나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 미사를 올리던 중, 동생은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작은 일탈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인생은 때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