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했다가 점심을 배불리 먹고 온 날이었다. 저녁이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아 아내와 라면 하나를 끓여 나눠 먹기로 했다. 내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아내는 김장김치를 꺼내 먹기 좋게 썰었다. 마지막 남은 김치 밑동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는 모습을 보니, 문득 어린 시절 도시락 반찬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국민소득 1,000달러를 목표로 하던 시기였으니 대부분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는데, 40대 초반의 아버지가 실직한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질적인 가장이 된 어머니는 노점상이며 봇짐장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어머니가 고생한 덕분에 우리 집 살림이 풍족하진 않아도 버틸 수 있었지만, 일단 어머니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돈을 달라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돈 없어. 엄마 팔아서 가져가.”
어머니는 먹을거리에도 인색했다. 재래시장 근처에 살아서 반찬거리는 제값 주고 사는 것보다 얻어오는 경우가 많았고, 과일은 늘 멍이 들거나 상처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저마다 도시락을 꺼내 들었는데, 대부분 집에서 먹던 반찬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두부나 콩나물, 어묵, 계란, 콩자반 같은 반찬이 들어 있으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아이들은 함께 모여 반찬을 나눠 먹었는데, 나는 반찬을 내놓기가 부끄러운 날이 많았다. 거의 매일 김치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먹기 힘들 때도 많았다.
작은 초록색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긴 김치는 퀴퀴한 냄새가 나거나, 곰팡이처럼 하얀 것이 덮여 있거나, 양념이 거의 없는 날 것 상태일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반찬통을 열었더니 김치 밑동이 꽉 들어차 있었다. 반찬통 입구보다 큰 밑동이 어떻게 들어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꺼내 먹기 어려워 그대로 가져갔는데, 다음 날 점심시간에 반찬통을 열어보니 전날 그대로 들어 있었다. 유명 연예인이 TV에 출연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이 없어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나마 도시락을 가져갈 수 있는 형편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어쩌면 반찬에 대한 불만도, 도시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사치였는지 모른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어린 학생들이 도시락 대신 급식을 먹고, 반찬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아내가 버리는 김치 밑동을 보며 어린 시절 점심시간의 허전함을 떠올린다. 도시락 반찬통을 열던 순간의 서글픔. 그러나 오늘, 라면 한 그릇에 김치를 곁들이며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괜찮아. 그래도 잘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