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라는 물결은 끊이지 않고 흐른다

by 백승인

며느리가 임신했을 때, 아들은 태명을 ‘대빵’이라고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러 광주까지 다녀온 적이 있는데, 경기 결과는 5대 0으로 크게 졌지만 그날 아이가 생긴 것 같다고 해서 ‘오대빵’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했다. 며느리가 손자를 낳자 아들이 출생신고를 한다며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손자의 이름을 미리 지어주셨던 일이 떠올랐다. 아들에게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어렴풋이 떠올리는 듯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잊고 있었다.


그 기억은 아들이 대학 다니던 어느 해 설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팔 여행을 마치고 섣달그믐날 돌아온 아들은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선물을 내놓더니,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고 설날 아침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민망해진 아내가 아들을 호적에서 빼야겠다며 농담을 했고, 아버지는 젊은 애가 그럴 수도 있다며 웃고 넘기셨다. 아침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부스스한 얼굴로 들어온 아들은 말없이 커다란 초콜릿 상자를 내놓고 제 할아버지 옆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버지는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셨다.

“ㅇ종이가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들일지 딸일지 모르지만 미리 이름을 지어봤다. 돌림자가 ‘열’이니 ‘재열’이라고 하면 어떻겠냐?”

아버지의 말씀에 일순 조용해졌다.


사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둘러싼 사연이 있었다. 나는 손주의 이름을 짓는 것은 할아버지의 특권이라 생각해 아버지께 부탁드렸다. 며칠 후, 아버지는 "부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부평에서 태어났으니 ‘부’를 따고, 항렬은 ‘종’이나 '인'을 쓸 수 있는데 '인'을 썼다."

사내아이 이름이 성까지 합하면 ‘백부인’이 되는 터라, 이름 때문에 아들에게 평생 원망을 들을까 싶었다. 결국, 다음 날 아버지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항렬로 '인'보다는 '종'이 낫지 않을까 싶네요.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ㅇ종’이라고 하는 게 어떠세요?"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항렬을 이름의 앞글자로 써야 하므로 제대로 따른 것도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침묵하셨다. 나는 그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러 동사무소에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아들의 주민등록번호가 달라지는 일이 생겼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당신이 사는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셨던 것이다. 아들은 한동안 두 개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다가, 지금은 아버지가 신고해 부여받은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손주의 항렬은 이름의 뒷글자로 '열' 또는 '하'를 쓸 수 있는데, 나는 아들에게 항렬에 얽매이지 말고 폭넓게 살펴보고 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며느리와 의논하여 몇 가지 이름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 것으로 해도 다 좋다고 했고, 며칠 후 아들이 말했다.

"대빵이 이름은 ‘ㅇ하’라고 할게요."

아들이 직접 출생신고를 했는데, 나는 손주의 출생신고를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꿈에서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한때 손주의 이름을 할아버지가 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부질없다는 걸 진작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된다는 그 자체만으로 특권이며 기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지어 주셨지만, 실제로는 내가 정한 이름을 쓰게 되었고 아들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 이름 짓기의 방식이 세대가 바뀔 때마다 달라졌지만, 이름이라는 물결은 마치 하나의 긴 강줄기처럼 끊이지 않고 흘러왔으며, 이름에는 자녀뿐만 아니라 가족을 향한 사랑과 존중이 담겨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내가 고친 이름, 그리고 아들이 선택한 이름.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름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