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려고 화장실 세면기에서 물을 틀었다. 수도꼭지 손잡이가 온수와 냉수의 중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무심코 물을 흘려보내며 걸레를 빨았다. 잠깐 사이였지만, 보일러가 작동한 모양이었다. 주방에 있던 아내가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4월에 걸레를 빠는데 온수를 쓰면 어떡해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요즘의 익숙한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16개월 된 손자가 오후마다 우리 집을 찾는 장면이다.
현관문이 열리면, 아내는 가장 먼저 손자의 손을 씻긴다. 당연히 온수를 사용하는데 바로 따뜻해질 리 없어, 수전에서는 한동안 물이 흘러야 한다. 미지근한 물이 손끝에 닿으면, 아이는 마치 놀이를 하듯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비누 거품을 만지작거리며 혼자서도 깔깔 웃는다. 손 씻는 일조차 하나의 놀이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는 너그러이 미소 짓는다.
간식이나 과일을 먹을 때도 손으로 집어 먹는 일이 잦다. 처음엔 물티슈로 손을 닦아주지만, 이내 다시 화장실로 데려가 온수로 정성껏 씻긴다. 배변을 하면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충분히 데운 후 씻긴다. 그렇게 손자는 늘 사랑이 담긴 따뜻한 물을 통해 보살핌을 받는다.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투정을 부렸다.
“내가 온수를 쓴 양이 얼마나 된다고 그래. ㅇ하 올 때 사용하는 거랑 비교도 안될 텐데, 너무하는 거 아냐?”
하지만 내 말에 아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신 하고 ㅇ하가 같아요?”
그 한마디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세상의 이치일지도 모른다. 같은 행동이라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이 따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은 너그러이 받아들이면서, 관계가 먼 사람의 행동은 쉽게 불편해진다. 내 아이가 울면 애틋하고 귀엽지만, 낯선 아이가 울면 시끄럽게만 느껴진다. 애정은 판단의 기준을 바꾸고, 감정의 결을 달라지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