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주차장을 지나던 중 한 여성이 주차된 차량에서 앞 번호판을 떼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궁금한 마음에 "체납 차량인가 봐요?"라고 묻자,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30여 년 전 동사무소 사무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구청에서는 동사무소별 지방세 체납액이나 세외수입 실적을 비교하며 경쟁을 유도했다. 마치 보험사나 자동차 판매 대리점에서 설계사나 딜러들의 실적을 그래프로 게시해 놓고 경쟁시키듯이 말이다. 부구청장이나 담당 국장이 매달 간부회의에서 회의자료에 적힌 순위를 보며 실적이 저조한 동장을 질책했다. 동장은 동사무소에 복귀해 간부회의 내용을 전달한다면서 직원을 불러 모아 야단을 쳤고, 사무장은 직원들에게 체납 사업장에 연락해 밀린 세금과 과태료 납부를 독려하거나, 조를 편성해 자동차 번호판을 영치하도록 지시했다. 직원들은 근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주로 출근시간 전에 번호판을 영치했다.
나도 새벽 6시경 직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관용차 조수석에 앉은 직원이 단말기로 차량 번호를 검색해 해당 차량 소유자의 체납 사실을 확인하면, 뒷자리에 있던 직원들이 연장을 들고 내려 번호판을 떼어내고, ‘체납 차량 번호판 영치’ 안내문을 앞 유리 브러시에 끼워 놓았다. 간혹 체납액이 많은 차량을 찾게 되면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작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원래는 각자의 관할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암묵적인 관행이었지만,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했던가. 실적이 매우 저조하거나, 실적 욕심이 있는 직원들은 관할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까지 진출해 체납 차량을 찾았다. 어느 날 우리도 체납 차량을 찾기 어려워, 인근 공동주택 대형 단지로 가기로 했다. 혹여 그 지역 동사무소 직원들과 마주칠까 조심하면서 단말기로 차량을 조회해 나갔다. 그곳에는 예상한 것처럼 체납 차량이 많았다. 그런데 한 차량의 소유자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흔한 이름이 아님에도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싶었는데 다음날 동사무소를 찾아온 사람을 보니, 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난처할까 봐 아는 척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차량 번호판이 영치되면 밀린 세금을 납부하고 찾아가지만, 가끔은 무슨 근거로 영치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분할 납부를 약속하기도 했다. 내 경험으로 본 체납자들은 대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다. 방송에서 보던 고액 체납자는 없었다. 고의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까. 오늘 번호판이 없어진 걸 알게 된 차주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