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집 근처 전통시장에 들렀다. 늦은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고 난 뒤, 시장 구경 삼아 중앙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 인근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인지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안은 북적였다. 사람들 사이를 피해 조심스럽게 걸어야 할 정도였다.
아파트 방향에서 이어지는 통로와 중앙통로가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시계 판매점에서 한 남자가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그 상가 건물의 관리인이었다.
시장 통로 양쪽으로 늘어선 점포 위에는 철제로 된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분홍색 페인트는 여기저기 벗겨지고 구조물도 제법 낡아 있었다. 아케이드 아래에는 각 점포에서 진열해 놓은 상품들이 통로까지 삐져나와 있었다. 본래는 고객이 비나 햇빛을 피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지만, 상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물건을 진열하려고 앞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오늘은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시장에 올 때마다 아내에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저 아케이드 만들 때 정말 고생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네. 에휴.”
20여 년 전, 나는 기초지자체에서 1년간의 장기 교육을 마친 뒤 경제부서 팀장으로 발령받았다. 주요 업무는 전통시장 지원이었다. 당시 이 업무는 대표적인 기피 부서였고, 근무 기간도 평균 1년 남짓에 불과했다. 사업을 계획한 사람, 추진한 사람, 마무리한 사람이 모두 다른 경우가 흔했다.
그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사업은 ‘아케이드 설치사업’이었다.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의 대표 사례로, 국비와 시비를 지원받아 추진되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사업비만 수십억 원에 달했고, 통상 3년 이상 걸리는 계속사업이었다. 나는 전임 팀장이 계획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 시기에 업무를 맡았고, 담당 직원과 함께 시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상인들을 설득하느라 밤 11시가 넘어 귀가하는 날도 많았다.
아케이드는 법적으로는 ‘비가리개’라 불리는 공동시설로, 고객이 비나 햇빛을 피하며 통행하거나 점포에서 상품을 진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설치된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상인들의 자부담 분담 문제였다. 전체 사업비의 90%는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하고, 나머지 10%만 상인들이 내면 되었지만, 그 10%조차 쉽게 모이지 않았다.
특히 점포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직접 영업하지 않고 세를 놓은 건물주들을 설득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중앙통로 중간에 위치한 한 상가는 반드시 사업 구간에 포함되어야 했는데, 그 건물주는 서울에 거주 중이었다. 나는 시계 판매점에 들러 관리인을 만나고, 그를 통해 건물주를 설득하기 위해 사흘이 멀다 하고 시장을 찾았다. 결국 동의를 받아 자부담을 확보해 낼 수 있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상인들이었다. 하지만 부담은 피하고 지원만 받으려는 일부 상인들 때문에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끝내 자부담을 내지 않겠다는 점포는 사업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사업이 민간 보조사업이어서 사업 주체는 상인회였고, 지자체는 행정적·기술적으로 조력하는 입장에 머물러야 했다는 점이다. 상인회는 공공 자금 집행에 익숙하지 않아, 지자체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웠다.
한편 당초 계획에서 빠진 일부 점포를 제외한 만큼 사업비를 감액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과, 예정된 예산을 모두 써야 한다는 상인회의 입장이 맞서기도 했다. 갈등 끝에, 추후 해당 점포가 뒤늦게 참여할 경우를 대비해 추가 공사비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상인회가 수용하면서 상황은 정리되었다.
사업 일정 못지않게 중요했던 과제는 고객의 통행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아케이드 아래 바닥에 페인트를 칠해 진열 구간과 통행 구간을 명확히 나눴고, 이를 지속적으로 상인회에 강조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사는 마무리되었고, 준공식도 무사히 치렀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유사 사업에서 뒷돈 문제가 불거져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일이 빈번하게 있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사업을 끝마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시장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에는 상인들이 바닥의 진열선을 지키는 듯 보였지만, 어느새 한두 점포가 상품을 조금씩 통로 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하더니, 결국 대부분의 점포가 아케이드 전 구간을 진열 공간으로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본래 고객 편의를 위해 조성된 공간이 시간이 지나 상인들의 전용 공간으로 변한 셈이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고객들이 아케이드 바깥에서 우산을 쓰고 오가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과연 이 공간이 자신들을 위한 통행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