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불복종과 저항

by 백승인

현재 우리의 법규들이 과거의 그것들보다 더 너그럽고 자유롭다고 한다면 그런 이득의 상당 부분은 법률 위반자들 덕분에 얻은 것이다.”


제임스 C. 스콧은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에서 이 같은 주장을 통해 사회의 진보가 반드시 합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법과 질서에 도전한 이들의 용기 있는 행위가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이는 법과 제도가 본질적으로 정당하거나 완전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진화해 왔음을 일깨운다.


실제로 법이 항상 정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법은 때때로 억압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때 법률 위반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불의에 맞서는 도덕적 실천이 된다. 1955년 미국 앨라배마에 사는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법을 거부했다. 그녀의 ‘불법 행위’는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제도 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사회적 비난과 형사처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지속적인 저항과 국제사회의 비판, 인권단체의 지지가 결합하면서 결국 2018년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결정했다. 이처럼 법률 위반이 오히려 정의를 확장하고 사회의 방향을 바로잡는 계기가 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공공의 안전과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는 결코 ‘저항’으로 미화될 수 없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무시한 자가격리 위반이나, 피해자에게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주는 디지털 성범죄처럼 자기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법을 무시하는 행위는 명백히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일이다. 얼마 전 법원을 점거하고 폭력을 행사한 시위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저항권’으로 포장했지만, 대법원은 그것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기반한 헌법 질서의 근간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단순히 ‘법을 어긴 자들’ 덕분만이 아니라, 불합리한 법과 제도에 맞서면서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윤리적 책임을 함께 고민한 시민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콧의 주장처럼, 법률 위반이 사회적 진보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도덕적 명분, 비폭력적 방식, 사회적 토론과 제도 변화로 이어지는 실질적 효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스콧은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운전자들이 서로 양보하며 질서를 만들어가는 장면을 예로 들며, 자발적 협력과 비공식적 규범이 때때로 공식 제도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를 작동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소규모 공동체 안의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실천들이 사회를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불복종과 저항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콧은 단순히 반항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장은 시민으로서의 비판적 사고와 능동적 참여를 촉구하는 요청이다. 우리는 그 요청에 응답하여, 지금의 법과 질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고,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한 성찰과 실천을 지속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 성숙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