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by 백승인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 과정을 권력과 이해의 충돌로 그려낸다. 그 과정은 단순한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벨리니 추기경의 표현처럼 ‘전쟁’에 가깝다. 국적 · 인종 · 이념에 따라 파벌이 나뉘고, 음모와 술수가 얽힌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콘클라베 첫 투표를 앞두고 로렌스 추기경이 추기경단 앞에서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이다.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 없겠죠.”

이 대사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 사회에서 ‘확신’은 때때로 배타성과 독선으로 흐르고, ‘의심’은 건전한 성찰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불신이나 정치적 공격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혹 해소’등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그 여파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정은 혼란에 빠졌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고,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문제는 그 출발점이었던 ‘부정선거’ 주장이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할 헌법기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중립성과 신뢰를 정면으로 의심한 데 있다는 점이다.

공정성과 신뢰를 둘러싼 의심은 선관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법원은 조봉암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으로 사법살인의 오명을 남겼고,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권력의 시녀를 자처했다. 경찰은 고문치사 사건에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비상식적인 해명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으며, 국회는 오랫동안 대통령의 거수기에 불과했다. 언론은 편파 보도와 선정주의로 인해 ‘기레기’라는 조롱을 받고 있으며, 일부 언론은 세습적 권력 구조라는 비판까지 자초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공공기관과 언론이 공정성과 상식을 잃게 되면, 그 존재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기대 대신 실망을 반복하며,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된다. 특히 일부 뉴미디어가 특정 진영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고, 전통 언론인 레거시 미디어조차 정치적 편향성을 감추지 않으면서, 시민들은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의심은 빠르게 ‘확신’으로 번져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국가 역량을 소모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실제로 비상계엄의 단초가 된 ‘부정선거론’은 일부 뉴미디어에 의존한, 검증되지 않은 의혹에서 비롯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는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확신은 신념에서 비롯되지만, 의심이 결여된 확신은 언제든 독선으로 흐를 수 있다. 반면 의심은 성찰의 출발점이지만, 무분별한 의심은 공동체를 허무는 불신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유지하려는 성찰적 노력이다. 민주주의는 이 두 감정이 긴장 속에서 균형을 이루며 작동하는 체제다. 6개월여의 혼란과 갈등을 지나온 지금, 우리는 다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왜 확신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확신은 충분히 의심받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