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속도와 발걸음으로 걸어야 하는 것

by 백승인

여러 명이 함께 산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줄을 지어 걷게 된다. 앞사람의 속도에 맞춰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걷는 순서도 자연히 정해진다. 하지만 오를 때의 순서가 내려올 때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순서보다 중요한 것은 여정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산행의 시작은 대개 가파르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지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첫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동안은 평탄하고 걷기 편한 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다시 오르막을 만나게 된다. 정상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그 마지막 경사를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정상에서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정상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준비가 부족하거나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중도에 돌아서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산행이 의미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올라가고, 무리라고 판단되면 용기 있게 돌아설 줄 아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특히 늦은 오후의 산길은 어둠이 빨리 내려앉고 출입이 제한되기도 한다. 숲이 드리운 그늘은 시원한 쉼터가 되지만, 방향을 헷갈리게 만들어 길을 잃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적절한 시점에 멈추거나 되돌아오는 선택 역시 중요한 결단이다.


정상에 올랐다고 끝이 아니다.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하는데 오히려 하산길이 더 조심스럽다. 많은 이가 하산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오르며 풀린 다리로 인해 작은 돌부리나 나무뿌리에도 쉽게 걸려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은 마지막 발걸음까지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여정이다.

함께 걷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큰 힘이 된다.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된다. 그러나 결국 산은 각자의 체력으로 오르고 내려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다. 끝까지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만, 그 길은 진짜 내 것이 된다.


인생도 숨 가쁜 오르막이 있고, 어느 순간 평탄한 길이 이어지며, 다시금 가파른 고비가 찾아온다. 때로는 하산길에서 더 큰 위험을 만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갈림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곁에 누가 있어도, 결국은 자신의 속도와 발걸음으로 걸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으며 그 여정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배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앞으로의 길을 더 단단한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