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다시 읽어 볼 『군주론』

by 백승인

『군주론』은 저자 본인이 ‘팸플릿’이라 부를 정도로 분량이 적은 책이다. 그러나 이처럼 큰 파장을 일으킨 저술도 드물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새로운 정치사상과 용어의 탄생 배경이 되었고, 이후 수많은 논쟁과 오해의 중심에 섰다. 거의 모든 고전 필독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막상 읽으려 하면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책이기도 하다. 마치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애타게 그리워하는 짝사랑의 대상처럼,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속에만 품어온 고전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이미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군주론』하면 곧장 떠오르는 건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즘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흔히 잔혹하고 냉혈한 지도자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실제로 『군주론』을 읽고 난 후, 내가 알고 있던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은 전혀 다른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역사학자 랑케의 “어느 역사적 사실도 그것이 이루어진 시대의 역사적 환경 속에서만 진실되게 이해될 수 있다”는 통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쓴 15세기말, 그의 조국 이탈리아는 수많은 도시국가로 분열된 채 혼란에 빠져 있었고, 프랑스와 독일 등 외세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국이 외세에 짓밟히는 상황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마키아벨리 또한 조국의 구원을 간절히 바랐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내의 통일과 외세의 축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국가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존재로 새로운 전제군주, 즉 ‘군주’를 상정했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처방을 담은 것이 바로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한다.

“군주란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신의를 저버릴 줄도 알아야 하며, 자비심이나 인간미, 심지어는 종교적 도덕조차 때로는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군주는 운명의 변화와 상황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질이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언제나 외관으로 군주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이기고 나라를 유지하는 일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오히려 이를 지키지 못하는 지도자가 비난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인정이나 불필요한 동정, 과한 배려가 오히려 국정에 해를 끼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숱하게 보아왔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어리석은 인정으로 인해 스스로를 패배로 이끈 송양공(宋襄公)의 행위를 두고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표현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군주론』의 일부 구절이 동양 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군주에게 있어 최상의 성곽은 백성의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다. 어떤 성을 세워도 민중의 분노 앞에서는 당신을 구할 수 없다.”

이 구절은 동양의 정치 철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공자가 노나라 애공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는 말로,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하듯이 백성에 의해 통치자가 흥하거나 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군주론』은 절박한 시대적 고뇌가 담긴 책이다. 조국의 운명을 걱정한 한 지식인의 간절한 목소리이자,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다. 이제는 선입견을 거두고, 이 고전을 곁에 두고 다시 읽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