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리를 내는 아내의 하얀 운동화

by 백승인

아주 가늘어 곱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 비가 내리는 10월의 첫째 일요일 오전이었다. 집에서 나올 땐 비가 내리는 듯 마는 듯했지만 매사 준비가 철저한 아내를 따라 우산을 챙겼다. 1시간가량 지나 공원 너머 교회를 다녀오는 길, 공원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빗줄기는 여전히 가늘었지만 우리는 각자 우산을 받쳐 들었는데, 우산을 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공기는 축축했지만 맑았다. 흙냄새와 풀냄새, 그리고 젖은 나무의 향이 뒤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아내가 말했다.
“아, 나무 냄새가 참 좋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 계속되는 불볕더위로 힘들어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인데, 오늘은 긴 팔 셔츠만으로는 부족해 재킷까지 걸치게 된 날씨였다. 계절은 늘 사람의 마음이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바뀌어 간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발걸음마다 ‘개굴개굴’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하얀 운동화에서 나는, 마치 개구리울음 같은 소리였다.

“신발에서 소리가 나네?” 내가 웃으며 말하자 아내가 말했다.
“이 신발을 신을 때마다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신발 바닥은 멀쩡한데…”
아내는 운동화를 살펴보다가 말했다. “아, 뒤꿈치 쪽에서 나는 것 같아. 양말이 반쯤 벗겨졌어.” 아내는 굳이 운동화를 벗고 앞에만 신겨져 있는 양말을 보여줬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비 오는 날 공원길에 울려 퍼지는 개구리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그 소리는 공기 속의 새소리, 바람에 실린 나무 냄새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비는 여전히 실처럼 가늘게 내렸고, 우리는 서로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나아갔다.

개구리 소리는 신발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아내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비가 오면 개구리가 운다고 했던가.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 중에는, 비 오는 날 개구리가 우는 건 죽은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문득 떠올렸다.
“아내는 개구리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어느새 돌아가신 지 7년이 흘렀지만, 그리움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막내딸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어 손수 도시락을 들고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져오시던 일, 결혼하면서 살림을 났지만 어린아이 키우며 힘들어하는 딸이 끼닛거리 걱정할까 싶어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던 일, 기억을 하나하나 잃어가면서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의 눈길을 보내던 모습을 이야기할 때면 아내는 눈물 없이 우는 듯하다. 그 그리움이 비 오는 날 신발 속에서 ‘개굴개굴’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아내는 둘째 언니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그 언니는 아내보다 22살 많아 언니라기보다 엄마에 가까웠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뜬뜬한 관계로 지냈다. 서로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전화로 털어놓으면 고민이 풀리는 언니였다. 그 언니가 떠난 뒤, 아내는 한동안 침울했다. 그리고 지금도 문득문득 언니 생각에 잠긴다. 그럴 때면 아내는 담담히 말하지만, 깊은 곳에 슬픔이 고여 있는 듯하다. 8남매 중 막내인 아내가 60대 중반으로 접어들다 보니 언니, 오빠, 형부 가운데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다. 한 사람씩 떠나보내며, 그 빈자리를 추억으로 채워 넣는 일에 익숙해져야 하는 나이. 하지만 익숙해진다고 슬픔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 아내의 운동화에서 들려온 개구리 소리는, 그런 마음의 여운 같았다. 젖은 공기 속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소리로 변해 우리 곁을 따라왔다. 개구리는 비를 기다리며 운다고 하지만, 어쩌면 비는 그 울음을 들으러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원 끝자락에 이르자 우산을 쓰지 않으면 곤란할 정도로 빗방울이 굵어졌다.
“역시 당신 말 듣고 우산을 챙기길 잘했어.”
아내는 그 말에 미소로 살포시 대답했다.


나는 아내의 하얀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개구리 소리가 났다. 비는 멈출 기미가 없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맑아졌다. 아내의 운동화가 내는 개구리 소리는, 살아 있는 이의 그리움이 내는 가장 순한 울음이었다. 그 울음 덕분에 나는 오늘, 세상을 조금 더 다정하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