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마음이 먼저 자라는 시간

by 백승인

손주와 함께 있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소란스럽고, 동시에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아직 말이 완전하지 않지만, 그 서툰 언어 속에는 세상의 모든 감정이 들어 있다. 밥을 먹다 “안 머!”라고 말하는 손주의 입술은 귀엽고 단호하다. ‘안 먹어’라는 뜻임을 금세 알아차린다. 억지로 한 숟가락을 더 먹이려 하면, 손주는 고개를 돌리거나 혀를 내민다. “그만!”이라는 말 대신, 그 표정 하나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한다.


말을 배우는 중이지만, 이미 소통은 완성되어 있다. 내가 아이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면, 아이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한 듯 아주 작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함과 웃음이 뒤섞인 어색한 감정으로 상황을 수습한다.


아이의 목소리는 청량하고 그 안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름 붙인다. 빨강, 파랑, 노랑은 ‘빨, 파, 노’가 되고, 개미는 ‘야니’, 무당벌레는 ‘무부벌레’가 된다. ‘엄마’, ‘아빠’는 또렷하게 부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 혀끝이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 ‘아니’처럼 들린다. 그래도 나는 그 어설픈 부름 속에서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눈빛을 읽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말을 정확히 하지 않아도, 마음은 이미 서로 닿아 있다. 그 이름 짓기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손주가 “하지” 하고 부를 때마다, 나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따뜻함을 느낀다. 언젠가 손주가 또박또박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조금 늦게 오면 좋겠다. ‘아지’라는 말이 사라지면, 지금처럼 세상이 아이의 눈높이로 보이던 순수하고 해맑은 이 시절도 함께 끝나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지 소리가 아니다. 아이와 나 사이의 대화는 눈빛, 표정, 손짓, 웃음으로 이루어진다. 손주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순간, 그 미소가 곧 “고마워요”, “좋아요”, “같이 놀아요”라는 말이 된다. 반대로 내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어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흔든다. 우리는 말 대신 감정으로 이야기한다.


어느 날 저녁, 손주가 장난감을 던졌다. 만약 아들이나 며느리가 있었다면 아이의 두 손을 잡고 단호하게 제지했겠지만, 나는 그저 부드러운 어조로 “그러면 안 돼”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는 멈칫하더니 “안 돼?”라고 따라 했다. 그리고 조금 뒤, 장난감을 조심스럽게 주워 내게 건넸다. “안 돼”의 뜻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표정과 눈빛에서 ‘그건 좋지 않은 일’이라는 감정을 읽은 것이리라.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이는 말보다 마음의 언어를 더 빨리 배운다는 것을.


손주와의 시간은 나를 다시 ‘처음으로’ 데려간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통하던 시절, 모든 것이 새로웠던 그때로. 그리고 그때마다 깨닫는다.
“말이 통한다는 건, 단지 말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서로 닿는 일이다.”
그 짧은 순간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