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by 백승인

새벽 5시 50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를 나섰다. 버스 좌석은 이미 반 이상이 차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퇴직한 지 벌써 5년, 현직에 있을 때도 집과 가까운 직장이었던 터라 버스를 탈 일조차 드물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
문득 서울 6411번 버스가 떠올랐다. 새벽 4시에 출발해 15분 만에 만석이 된다는, 한 정치인의 연설로 유명해진 그 버스.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금은 누가 대신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용산역에 도착했다. KTX를 타고 익산까지 간 뒤, 전용버스로 선운사와 내소사, 채석강을 둘러보는 당일 여행 일정이다. 두 달 전, 같은 방식으로 군산을 여행했는데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무척 좋았다. 가까운 곳은 괜찮지만 2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하는 일은 이제 조금 부담스러웠다. 군산 여행이 꽤 만족스러워 그 여운이 가시기 전 다른 지역 여행을 찾아봤고, 처음엔 강천산을 목적지로 예약했으나 인원이 부족했던지 여행사 권유로 선운사 일원으로 바뀌었다.

선운사, 내소사, 채석강. 이름만 들어도 오래전 추억이 깃든 곳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처음 구입한 자동차에 초보 딱지를 달고 여름휴가를 떠났던 곳. 그로부터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그 후로 몇 번 회사 동료들과 다녀왔지만, 그마저 10년도 넘은 일이다.
오랜만에 선운사 경내를 둘러보던 중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길래 “지금 선운사 경내. 너 어릴 때 왔던 거 기억나?” 하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기억이 안 나요.”였다. 그럴 만도 했다. 나조차도 처음 온 듯 생소했으니까.

4대 천왕문을 지나면 보통 대웅전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만, 선운사는 달랐다. 대웅전 앞마당이라 할 만한 공간에 ‘만세루’라는 커다란 전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 올라 나지막한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대웅전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정말 이곳에 왔던 적이 있었을까, 아내와 나는 서로의 기억을 더듬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만 아내는 그때 함께 왔던 조카가 더운 날씨에 힘들어해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아내는 내가 예전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며 수시로 타박하곤 하는데, 아내의 기억도 이제 온전하지 않은 듯하다.

사찰을 나서며 연잎 약과를 사서 하나씩 베어 물고 내려오던 길, 경내에 자리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사찰의 고요한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핫도그 판매’ 간판이 이색적이었지만,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려는 이들에게는 좋은 쉼터였다.
아내와 나는 그곳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 중에도 어김없이 손주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보내준 동영상 속에서 손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또 보며 웃었다. 아내는 “손주가 당신을 그렇게 좋아하니 성공한 인생이지”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손주의 손을 잡고 걷노라면 어떤 연인이 그렇게 할까 싶을 정도로. 손주는 조그마한 입술로 내 손등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여러 차례 한다. 나는 확실히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다음 목적지는 내소사였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는 길, 기억 속 풍경이 조금씩 겹쳐졌다. “그래, 이런 길이었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다운 숲길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전나무길,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여름이면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고, 겨울이면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길. ‘이곳에 오면 누구나 소생한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내소사 입구에는 4대 천왕을 소개하는 커다란 안내문이 걸려 있다.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들이다. 예전엔 그 무표정한 얼굴이 무섭기만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친근하다. 세월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를 지나 봉래루에 다가섰다. 색색의 작은 도기들이 매달린 줄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악기처럼 맑게 울렸다. 사람들의 소원이 부딪혀 내는 소리였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1,400년 역사를 지녔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조선 인조 때 건물로, 문살의 섬세한 꽃무늬는 한국 목조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경내를 둘러보던 중 기도하는 자세로 사진을 찍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여성은 절 안 곳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앉거나 서 있었고,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조금만 더 숙여, 오른쪽으로!” 하며 자세 교정을 지시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신앙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연출인 데다가, 다른 이들이 지나다니는데 방해되는 행위로 보였다. 그 여성은 대웅전 안에서도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 틈에서 구부정하게 선 채로 사진을 찍느라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찾은 채석강은 선운사처럼 낯설었다. 그러나 해안을 따라 걸으며 절벽의 결을 바라보는 순간, 수만 권의 책을 층층이 쌓은 듯하다는 암벽을 봤던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물이 밀려 들어오는 속도가 눈으로 보일 만큼 빨랐다. 서둘러 해변으로 돌아와 모래 위에 늘어선 나무 말뚝에 앉았다. 붉게 물든 바다가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웠다. 내 옆에는 딸과 함께 온 듯한 노부부가 앉아 있는데, 그들 앞에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손자가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십 년 뒤의 우리 모습을 떠올렸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에는 낙조보다 손주가 더 아름답게 보이겠지.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11시 10분, 씻고 나니 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하루가 길었다. ‘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런 피로라면 기꺼이 견딜 수 있다. 아직은 자고 일어나면 몸이 거뜬하다. 나흘 뒤인 일요일에는 친구 두 부부와 함께 내장산에 간다. 오늘 이용한 여행사의 또 다른 상품이다.

오래된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