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지난 7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하며 손주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 주중에는 어린이집을 마친 손주가 아들과 함께 우리 집에 와서 3~ 4시간 머물다 저녁을 먹고 돌아갔다. 그 사이 아이는 눈에 띄게 자랐다. 주말에는 오지 않다가 월요일이 되면 다시 오곤 했는데, 불과 사흘 사이에도 달라진 모습으로 우리 부부를 놀라게 했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어나는 만큼 말도 부쩍 늘었다. 처음에는 빨강, 노랑, 파랑을 “빨, 노, 파”로 구분하던 아이가 어느새 “나 잡아봐라”라며 문장을 말하더니, 더 나아가 “아기 상어 틀어주세요”라며 존댓말까지 자연스럽게 썼다. 나를 ‘하~지’라 부르던 아이가 또박또박 “할아부지”라고 부를 때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우리 부부는 놀라움과 기쁨을 번갈아 느꼈다.
하지만 그 일상이 변할 때가 다가왔다. 아들이 복직을 앞두고 있던 지난 9월 중순, 며느리가 단축근무를 하기까지 당분간 우리 부부에게 어린이집 하원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이 복직한 뒤로는 나와 아내가 어린이집으로 가서 아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아들이 퇴근해 데리러 올 때까지 함께 놀고, 저녁을 먹었다. 예전보다 손주와 함께하는 시간이 한 시간쯤 더 늘었다.
아내의 하루를 보면 오전엔 집안일을 하고, 이른 오후엔 농산물도매시장이나 생협, 동네 마트를 오갔다. “우리 집에 VIP가 오시는데 좋은 걸로 주세요.” 하며 손주가 먹을 식재료를 고르는 일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돌아오면 부지런히 지지고 볶으며 음식을 만들었다. 오후 세 시가 넘으면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달려가 손주를 데리고 오고, 돌아오자마자 또 아이가 먹을 음식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우리 부부가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했다. 아내는 그 바쁜 중에도 틈틈이 아이와 놀아주고, 아들이 퇴근해 함께 저녁을 먹고 나면 식기세척기의 도움을 받아 가득 쌓인 그릇을 정리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우리 손주는 어쩜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까?” 하며 행복한 미소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런데 그 일상이 10월 중순이 되자 끝났다. 며느리가 단축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러 간 마지막 날 어린이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문이 열리자 손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반가움에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아이는 평소처럼 포근히 안기는 대신, 자그마한 두 손으로 내 뺨을 잡더니 양쪽에 차례로 입맞춤을 했다. 그 부드러운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가 웃으며 선생님께 말했다.
“아이가 할아버지를 많이 좋아해요.”
선생님은 “그런 거 같아요. 아빠, 엄마 이야기하고 나면 꼭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도 해요.”라며 함께 웃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랑이란 말보다 먼저 자라나는 감정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마침 그날은 아들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집 근처의 작은 호텔 양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나와 아내는 손주와 함께 집에서 출발했고, 아들과 며느리는 각자 직장에서 곧장 식당으로 왔다. 아내는 손주가 먹을 음식을 챙기느라 평상시처럼 분주했다. 내가 “오늘은 나가서 먹을 텐데 뭐 하러 고생하느냐”라고 했지만, 아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허둥지둥 외출 채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내가 손주를 안아 들었더니 아이가 몇 시간 전 어린이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양쪽 뺨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다정한 동작이었다. 이어서 아내에게도 입맞춤을 했다. 그 순간, 가슴 한쪽이 묘하게 저릿했다. 마치 이별을 앞둔 연인이 “아쉬워하지 말라”는 듯 가볍게 돌아서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들 부부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라며 인사했다. 그리고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가 많이 아쉬워하시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를 보시는 게 어때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본다니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매일 보던 아이를 이제 자주 못 보게 되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내는 며느리에게 언제라도 봐줄 수 있으니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나는 아들 품에 안긴 손주에게 손을 흔들며 “잘 가라”라고 인사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내일 또 봐”라고 했었는데,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내일’이 당분간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내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손주를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 나지 않는 듯했다. 다음날 점심때, 전날 손주를 위해 준비했던 갈치를 구워 먹으며 아내가 말했다.
“이걸 싸 들고 아이한테 가고 싶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파크골프장이나 다시 가보자고. 한참 못 갔잖아.”
손주를 일주일 후에 보게 된다면, 또 얼마나 자라 있을까. 단어가 더 늘고, 표정이 더 풍부해지고, 걸음이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손주는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그걸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해 주면 된다. 매일 보던 얼굴이 일주일 만에 만나는 얼굴이 되어도, 사랑의 크기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리움이 더해져, 다시 만날 때의 기쁨이 더 커질 것이다.
내 뺨에 입을 맞추던 손주의 부드러운 입술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짧은 순간,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입맞춤에는 모든 말보다 큰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 사랑 하나면 당분간의 빈자리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음에 손주를 만날 때, 또 얼마나 자란 모습으로 내게 달려올지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