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는데, 주차하다가 내 차를 건드렸으니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굳이 연락을 해 준 점은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와 차 키를 챙겨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젊은 남녀가 내 차 근처에서 어색하게 서 있다가 긁힌 부분을 보여줬다.
나는 평소에 “범퍼는 부딪치라고 있는 거지” 하는 편이라 웬만한 흠집은 그냥 넘기는 편이다. 초보 운전 시절 작은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 1톤 트럭을 몰던 상대가 오히려 내 차 상태를 살피며 너그럽게 웃어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내 차가 뒤에서 살짝 받힌 적도 있었지만 나 역시 시원하게 넘겼다. 차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렇게 남은 긁힌 자국들이 지금도 차 곳곳에 ‘훈장’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엔 흠집이 생각보다 커서 그냥 둘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리해야겠다고 말하자, 남자는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며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물었다. 편한 대로 하라고 하니 보험 처리하겠다고 했고, 곧바로 보험사에서 100% 자기네 과실이라는 안내와 함께 협력업체 목록을 보내왔다.
주말에 차를 쓸 일이 있었고, 굳이 정비업체를 거쳐 공장으로 보내느니 보험사가 추천한 협력업체로 직접 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러면 혹시나 상대방 부담이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월요일 아침, 협력업체에 차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온 뒤 곧바로 예상 수리비 84만 원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생각보다 큰 금액에 놀랐다.
그 순간 8개월 전 일이 떠올랐다. 아내가 장례식장에서 조카를 바래다주고 온 다음날, 다른 사람의 차를 스치고 간 영상이 제출되었다고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사실이었다. 아내는 물론이고 함께 타고 있던 처형도 사고를 냈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보험사의 도움으로 후속 조치는 잘 마무리됐지만, 청구된 수리비는 예상보다 컸다. 우리는 서로 놀라며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이번 일을 겪고 보니, 그때 우리가 느꼈던 억울함과 의문—혹시 상대방이 지나치게 요구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런 감정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를 긁은 그 젊은 남성도 80만 원이 넘는 수리비를 보고 당황할 수 있고, 마음이 편치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자동차는 사람과 사람을 참 자주 만나게 하는 존재다. 의도했든 아니든 사과해야 할 때가 있고, 사과를 받아야 할 때도 있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불안하고 민망하고 혹은 손해 보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번 일은 그저 차 한쪽에 난 흠집을 보험으로 처리하는 단순한 사건이었지만, 나에게는 작은 깨달음을 남겼다. 잠시라도 상대방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마음이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너무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순간에는 내가 억울한 피해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사람 사이의 일은 원래 그렇게 복잡하고, 입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지나치지 않도록 스스로 살피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을 겪고 난 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더불어 잘 산다는 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는 작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