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나는 퇴직 후 2~ 3년 동안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하면서 책도 읽고, 여유가 될 때는 여행을 다니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봉사나 독서는 계획한 만큼 했지만, 여행은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한동안 팬데믹 여파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외국 관광객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내 돈 내고 불친절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일본이나 동남아로 방향을 틀자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제주도를 열심히 찾았다. 퇴직하던 해에는 한 달 살기를 하며 오름 40여 곳을 돌아다녔고, 이후에도 해마다 한두 번씩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비행기를 탈 때마다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했다.
지난해까지는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을 꾸려 지내면서 단체 활동을 했고, 틈틈이 취미생활도 즐기느라 굳이 해외여행을 간다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 올해 들어 사무실을 정리했지만, 대신 오후 시간에 아내와 함께 손주를 돌보다 보니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던 중 며느리가 단축근무를 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여유 시간이 생기자 곧바로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스페인, 포르투갈, 혹은 남프랑스의 한적한 마을에서 여유를 즐기는 여행을 꿈꿨다. 하지만 아내는 튀르키예를 원했다. 친구나 지인들이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영향을 받은 듯했다. 생각해 보면 올해 아내는 참 바쁜 시간을 보냈다. 손주와 함께 보낸 시간은 내게는 기쁘고 행복했지만, 아내에게는 기쁨과 숨 막힘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만큼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아내가 원하는 곳을 선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튀르키예는 얼마 전까지 ‘터키’라 했고 한국전쟁에 참전해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국가이다. 그런데 국호가 왜 바뀌었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원래 자국 명칭이 Türkiye인데 영어권에서 Turkey로 불리다가, 2022년에 UN에 정식 변경 요청해 승인받았다고 한다. 사실 공식 표기를 바꾼다고 다른 나라에서 따라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지만, 대한민국은 이를 수용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꽤 고마워할 일이다.
여행 준비를 하기에 앞서 홈쇼핑 광고에 나온 여행상품을 문의했지만, 주말이라 다음 주에 연락하겠다는 문자를 보내더니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대형 여행사들의 상품을 비교했다. 이제 나이도 있는지라 조금 비싸더라도 쇼핑과 옵션이 없는 일정 위주로 살펴봤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동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사 대표가 직접 인솔하며 여행객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회사는 홈페이지도 제대로 없는 듯했지만, 구글 검색을 통해 들어가 보니 튀르키예, 조지아 3국, 이집트, 프랑스 등 다양한 지역에 ‘노 쇼핑·노 옵션’ 상품을 진행하고 있었다.
튀르키예 일정은 한 달 뒤 출발하는 일정의 모집 인원 37명 중 34명이 예약 완료된 상태였다. 가격은 다소 높았지만 비슷한 조건의 대형 여행사 상품과 비교하면 나쁘지 않았다. 서둘러 여행사에 연락해 한 달 뒤 출발하는 일정을 확정하고 계약금을 넣었다. 여행사 안내에 따라 항공권도 직접 구매하고 좌석도 예약했다. 얼마 전 집 근처에 공장형 판매장이 들어섰는데, 그 안에 가장 비싼 상품이 5천 원인 매장도 함께 문을 열었다. 그곳을 들락날락하며 동영상에서 본 여행 준비물—패딩 압축용 지퍼백, 각종 파우치, 슬리퍼, 옷걸이, 목베개 등을 챙겼다. 품목당 가격은 1천 원에서 5천 원 사이였지만, 이것저것 모으니 5만 원 가까이 들었다.
평소 다니던 시립도서관에서 새로 나온 튀르키예 여행 책자를 챙겨 왔다. 여행 관련 동영상도 틈틈이 찾아보며 정보를 모았다. 여행 당일 새벽, 공항까지 데려다줄 밴 차량 예약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대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떠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