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로 떠난 일주일 2

2. 1일 차, 인천 - 이스탄불

by 백승인

우리를 태우고 튀르키예로 향할 비행기는 아시아나 항공, 출발 시간은 오전 9시 35분이다. 5시 30분 집을 나섰는데 모바일 앱을 통해 예약해 둔 차량을 이용했더니, 공항까지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직 6시가 되기 전이었지만 공항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항에 오면 “나는 큰맘 먹고 오는데, 참 팔자 좋은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려는데 스마트 패스 이용자용 입구가 따로 표시돼 있었다. 아내와 함께 일반 출국장 입구까지 갔다가 양해를 구하고 나는 스마트 패스 쪽으로 향했다. 일반 입구보다 훨씬 한산해 금방 검색대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바로 옆줄이 유난히 짧은 것이 눈에 띄었다. 휠체어 사용자나 고령자도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편한 길을 찾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인지, 다음 여행 때는 그 입구로 들어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대를 지나니 어느새 면세 구역. 아내가 나오길 한쪽에서 기다렸고, 10여 분 뒤 아내가 모습을 보였다. 게이트로 이동하는 길에 여행정보 창구에 들러 외국 동전 모금함 위치를 물었다. 집에서 미리 챙긴 캐나다, 싱가포르, 중국, 일본, 대만의 동전들을 모금함에 넣었다. 작은 일이지만 여러 여행의 흔적을 한 번에 털어놓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은 예상만큼 비좁지는 않았지만 다리를 꼬고 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앞사람이 등받이를 젖히면 공간이 더 좁아지고, 좌석 사이에 있는 팔걸이에 올린 팔이 옆 사람과 스칠 정도로 답답했다. 대한항공에서 ‘프리미엄 이코노미’석 도입을 발표했다가 철회한 일이 떠올랐다. 비즈니스석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이코노미석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쉽지 않은 요즘, 적절한 가격으로 제대로 된 중간 좌석이 나온다면 참 합리적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좁은 좌석에 장시간 앉아 있다 보니 오른쪽 무릎 근처에 저릿한 통증이 왔다. 통로 쪽에 앉은 아내에게 양해를 구해 몇 차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근처에서 다리를 풀었다. 20여 년 전 첫 유럽 여행 때 기내에서 먹던 비빔밥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 기내식에서는 그때의 감동을 느끼긴 어려웠다. 그래도 하늘 위에서 먹는 한 끼는 언제나 여행의 시작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다.


12시간을 날아 오후 4시 무렵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 나오니 약 5시, 공항에 마중 나온 가이드는 키가 크고 멋진 청년이었다. 일정표에는 ‘호텔 체크인’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가이드는 호텔로 가기 전에 ‘성 소피아 성당(하기아 소피아)’에 간다고 했다. 수신기를 나눠주며 이어폰을 준비하라 하고, 여성들은 머리를 가릴 머플러를 꺼내라고 했다. 장거리 여행에 지친 상태이고 예상하지 못한 일정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가는데, 교통체증이 만만치 않았다. 가이드는 이스탄불이 튀르키예 81개 주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거의 세 배에 이르는 넓이에 1,500만 명이 산다는 말이 실감 날 즈음, 어느새 버스는 하기아 소피아 앞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아내는 다른 여성들처럼 머플러를 머리에 감싸보려 했지만, 평소 목에만 두르던 것이라 자꾸 흘러내렸다.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난감했다. 검색대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는데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로 되어 있었다. 황후의 가마가 드나들기 편하도록 만든 구조라고 했다. 실내는 네모난 공간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세 면을 둘러보고 대리석 문을 지나 콘스탄티누스 9세와 황후의 모자이크 앞에 섰다. 부부의 손에 들려있는 돈주머니가 인상적이었다. 2020년 이후 1층 본당은 무슬림만 출입할 수 있어 2층만 관람 가능하다고 했다. 1층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1층으로 내려와 출구로 나오기 직전 오른편의 작은 방에 들어가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를 중심으로 왼쪽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하기아 소피아를, 오른쪽의 콘스탄티누스 1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바치는 모습이 모자이크로 남아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처음 마주한 중요한 역사 공간인 만큼 더 천천히 보고 싶었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들 흐름에 떠밀리듯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기아 소피아는 같은 자리에 세 번 지어졌다. 360년 첫 건물, 415년 두 번째, 그리고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완성한 현재의 건물이 1,70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성당이었던 시절은 920년, 그 뒤 오스만 제국에 의해 모스크로 481년, 공화국 수립 후 박물관, 그리고 2020년 다시 모스크로. 긴 시간을 거쳐온 건물이지만 우리나라 여행사들은 여전히 ‘성 소피아 성당’이라 부르고 있다. 이제는 ‘하기아 소피아’ 혹은 ‘아야 소피아’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