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로 떠난 일주일 3

3. 2일 차, 이스탄불 - 앙카라

by 백승인

둘째 날 오전 일정은 보스포루스 해협 유람과 아시아 지구의 참르자 타워 전망이었다. 지중해에서 흑해를 바라보면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유럽, 오른쪽에는 아시아 대륙이 펼쳐지는데, 모두 이스탄불이라는 한 도시 안에 있다. 동로마와 오스만제국의 수도였고,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서 문명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던 도시답게, 유람선이 천천히 흘러갈수록 도시의 층위가 켜켜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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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루스라는 이름이 그리스 신화의 ‘암소가 건넌 강’에서 유래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건축물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돌마바흐체 궁전은 유람선 위에서 멀리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위용을 자랑했다. 며칠 뒤 직접 방문할 예정이지만, 이날의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전날에는 긴 비행과 첫 일정의 여파로 다른 일행을 살필 여유가 없었지만, 유람선에서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단체 여행객은 총 35명인데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대부분 부부, 부(모) 녀, 형제자매 등 가족 단위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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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참르자 타워였다. 2021년에 개장한 이 타워는 튤립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며, 360도 파노라마 전망대에서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이스탄불 전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서울의 남산타워나 롯데타워에는 가본 적 없지만,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파리 에펠탑을 이어 이스탄불의 최신 전망대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생각에 새삼 여행의 묘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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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는 안내 직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인데, 안내 직원의 존재가 오히려 반가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은 참 멋졌고, 내가 사는 지역의 ND 타워가 떠올랐다. 100m에 이르는 높이를 자랑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지저분한 공장 지붕뿐이며 사람의 발길이 드문 전망대. 도시 간 사정은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스쳤다.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던 중, 길가 테이블에서 홍차를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스탄불이 ‘흡연자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금연한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순간 스쳐온 담배 냄새가 의외로 구수하게 느껴졌다. 식당에서는 안산에서 왔다는 인상 좋은 부부와 함께 앉게 되어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즐기며 식사를 즐겼다.


식당에서 나오니 바로 길 건너편에 앙카라행 기차역이었다. 출발까지 1시간 이상 여유가 있어 역사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형 편의점과 간편식, 디저트 가게가 이어져 있는데, 나는 카페에 들러 번역기 앱을 이용해 튀르키예 커피를 주문했다. 전통 방식은 뜨거운 모래 위에서 끓이는 것이라지만, 여기서는 가스 화구에 커피 가루와 물, 설탕을 넣어 만들어 냈다. 달고 진하며 약간 텁텁했는데, 함께 나온 물을 마시며 입을 헹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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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탑승 시간이 되어 여권과 승차권을 제시한 후 고속열차(YHT)에 올랐다. 이스탄불–앙카라 구간은 약 530km, 버스로는 6~ 7시간 걸리지만 열차로는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좌석 간격이 넓고 소음이 적어 승차감이 좋았으며, 달리는 내내 창밖으로 평야와 언덕, 작은 마을과 모스크의 첨탑이 흘러갔다. 수확이 끝난 시기라 황량해 보였지만, 다른 계절이었다면 풍성하고 화사했을 배경이 떠올랐다.


가이드가 미리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나는 아내와 몇 칸 떨어진 좌석을 배정받았다. 우리 부부만 그런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일행이 가족과 떨어져 앉는 상황인지라 서로 위치를 조정하여 결국 아내와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배려와 양보가 오갔고, 여행 중 만나는 인연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내 앞자리에 앉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여자아이는 아빠와 둘이 여행 중이었는데, 아빠와 떨어져 앉았지만 낯설어하지 않았다. 여행을 자주 다녔는지 일행 누구보다도 빠르게 무리에 스며들었다. 그 아이가 자신보다 어린 근처 자리의 튀르키예 어린아이들에게 스스럼없이 간식을 건넸는데, 아이들의 엄마로부터 감사의 뜻으로 땅콩을 받는 모습은 국경을 넘어선 친절의 작은 교환처럼 보였다. 어린아이들과 같은 마음을 갖는다면 세계평화, 인류공존이 어려운 일은 아닐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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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남짓 달려 앙카라역에 도착했다. 호텔에서의 저녁 식사는 메뉴가 거의 남지 않아 아쉬웠지만, 하루 일정의 피로감이 눅진하게 내려앉는 시간이었다. 앙카라는 튀르키예 공화국이 선포되며 새로운 수도가 된 도시로, 히타이트 시대부터 이어지는 깊은 역사를 품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이 있는 한국공원도 있는 곳이지만, 우리는 단지 잠을 자기 위해 잠시 머물 뿐이다. 다음 날 아침,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하게 될 아쉬움을 품은 채 짧은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