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일 차, 앙카라 - 카파도키아
셋째 날 일정은 소금호수와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둘러본 뒤, 점심으로 항아리 케밥을 먹고 오후에는 괴레메 야외박물관과 우치히사르를 방문하는 구성이다. 앙카라에서 두 시간을 달려 소금호수에 도착하자 ‘아름다운 말들의 땅’, 카파도키아가 가까워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참고로 카파도키아는 정식 지명은 아니고 넓게는 아나톨리아 지역을 가리킨다고 한다.
소금호수는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며, 강우량이 적어 세계적으로 염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계절에 따라 물이 고여 거울처럼 하늘을 비추기도 하지만, 우리가 방문한 시기엔 물이 거의 말라 새하얀 소금 결정만 남아 있었다. 산책하듯 걸으며 손끝으로 바닥의 소금을 집어 맛보니 짠맛이 혀끝을 때렸다. 그 광활하고 눈이 부시도록 희디흰 풍경은 단순한 ‘호수’라기보다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다시 두 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데린쿠유. 카파도키아에는 150~ 200개의 지하도시가 산재해 있다고 하는데, 이곳이 그중 가장 유명하고 규모도 크다. 부드러운 응회암을 파내고 물을 뿌리면 단단히 굳는 특성을 이용해, 기독교인들은 이곳에 은신처, 생활공간, 방어시설까지 갖춘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들었다. 깊이는 약 85m, 방과 방을 잇는 통로는 미로처럼 얽혀 있다. 지하 1층에는 주방과 가축 공간,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교회·학교·침실·우물 등 생활 구조가 층층이 이어지고, 통로 곳곳에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둥근 바퀴 모양의 돌문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허리를 곧게 펼 수 없는 좁은 통로가 이어졌다. 이렇게 어둡고 협소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여러 단체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려와 재래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붐볐고, 좁은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흐름에 떠밀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살펴본 것 같지 않은데 어느새 출구 근처에 섰다. 출구로 나가기 직전 넓은 공간에서 가이드는 10분의 자유시간을 주었지만, 일행 대부분은 미로 같은 구조 때문에 멀리 이동하기가 망설여져 근처를 서성거리며 둘러보다가 곧바로 출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와 아내는 좀 더 둘러보고자 여기저기 다니다가 우연히 좁은 통로 끝에서 비교적 넓은 방을 발견했다. 아치형 기둥까지 갖추고 있어 교회나 학교가 아닐까 싶은 공간이었는데, 나중에 가이드에게 들으니 과연 학교로 사용되던 곳이라고 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배움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의지와 집단 지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문득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이 구축한 지하 시설과 그들의 지략이 떠올랐다. 호찌민이 혹여 이곳에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닐까, 그런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데린쿠유를 나와 도착한 식당은 협곡 반대편에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지냈던 흔적들이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항아리 케밥은 혀가 아닌 눈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화장실 세면기조차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향한 괴레메는 ‘숨겨진’, ‘보이지 않는’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로, 4세기부터 13세기까지 수도 공동체가 번성했던 지역이다. 곳곳의 바위 군락에 교회와 예배당, 수도원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핵심이 바로 괴레메 야외박물관이다. 10~ 11세기에 조성된 15개 내외의 교회와 수도원, 종교 식당 등이 남아 있으며, 천 년 전 벽화가 형태를 유지한 채 보존되어 있어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암벽에 새겨진 신앙의 흔적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어 방문한 우치히사르는 기원전 3세기부터 바위를 깎아 만든 거대한 주거지다. 지금도 일부 공간은 카페로 활용되고 있는데, 내가 호기심에 들어가 본 곳은 비어 있었으나 작은 창문이 여러 개 나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잠시나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냉난방도 되지 않던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인간의 적응력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요정 굴뚝’이라 불리는 독특한 바위기둥이다. 단단한 현무암이 부드러운 응회암 위를 덮은 지질 구조 덕분에 오랜 풍화와 침식을 거쳐 지금의 버섯 모양 기둥이 만들어졌다. 높이는 사람 키 정도에서 10층 건물 이상까지 다양하고, 색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외계 행성에서나 볼 법한 풍경 속에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여행의 절정을 맞이했다.
다음 날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열기구 투어가 예정되어 있어 오후 일정을 조금 일찍 마치고 호텔에 들어갔다. 이튿날 새벽을 생각하니 설렘이 피어오르면서도 긴 하루의 피로가 동시에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