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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Jul 22. 2022

여기자의 사무실 무단침입

꼬꼬무 냉동고 영아 / 담당 천 형사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1)

SBS 꼬꼬무 방송화면


SBS 꼬꼬무 37회 '살인범의 미토콘드리아'의 실제 사건인 2006년 7월 23일 발생한 서래마을 프랑스인 영아 살해 유기 사건.



당시 수사과장실은 기자에게 항상 오픈되어 있었다.

경찰서 대언론 창구는 현재도 그렇지만 과장으로 일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장님 휴가 중 사건이 발생하여 강력팀장인 내가 직무대리로 언론대응을 하게 되었고, 과장님은 휴가 복귀 후에도 언론과 일관성 있는 소통을 위해 이례적으로 나를 책임자로 지정했었다.


매일 오후 2시로 정한 정례 브리핑 시간에 내가 정해진 분량의 수사사항 외에 별 다른 정보를 주지 않자, 기자들은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과장님을 찾아가 담화를 가장한(?) 취재를 하곤 했다.

과장님과 나는 사전에 조율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가 새어나가는 일은 없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 이야기 37회 살인범의 미토콘드리아 방송화면


문제가 벌어진 그날은 사건 발생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베로니크 씨가 피의자로 특정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수사팀은 그녀가 아이들을 낳고 살해했을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낸 상황이었기 때문에 언론에만 이를 알리지 않았을 뿐, 이미 자궁 적출 수술을 했던 S 병원 관련 수사사항이 보고서에는 적시되어 있었다.


그날 오전에 과장님을 모시고 국과수에 자문을 구하러 가기로 했는데, 과장님은 전화로 서무 직원에게 과장실 정돈을 맡긴 후, 사무실을 나섰다.

그 잠깐 사이에   언론사 여기자 A가 과장실을 방문했다가 벌어졌다!


과장실을 노크했다.


- (똑똑~) 계세요?

- ......

- (똑똑똑~) 과장님~ 저 A 기잡니다.


문을 빼꼼히 열어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책상 위에 놓인 수많은 수사보고서가 눈에 들어왔다.

대놓고 보지는 못하고, 누가 들어올까 반은 문쪽으로 향해 엉거주춤하게 서서는 보고서를 흘낏 흘낏 보면서 정보를 파악했다.

A 기자도 심장이 엄청 벌렁벌렁 했을 듯하다. 보고서를 차분하게 읽지 않는 이상 병원 이름이나 수사사항만으로 베로니크 씨를 의심한다는 내용까지 다 파악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그때! 서무 담당 직원이 과장실에 들어왔다!


- 누구세요? 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들어와 계세요?

- (얼굴이 빨개져서는...) 아... 네... 저 ○○ 언론사 A 기잡니다. 과장님이 안 계셔서 금방 오실 줄 알고요...

- 그렇다고 해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이렇게 들어오시면 안 되죠. 외근 나가셨으니 일단 나가시고 다음에 다시 오세요.


라고 하고는 내보냈다.


그런 일이 있었음을 국과수로 가는 도중에 전화로 전해 들었다.

여기자가 과장실에 있었는데 수사보고서를 본 것 같다며...


그날 오후, 이런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A 기자는 나와 약속을 잡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수사 진행사항을 물어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역시나!! 당시 어떤 기자도 물어보지 않았던 S 병원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S 병원 상대로는 수사를 하지 않냐, 그 병원에 혹시 뭐가 있는 것이냐 등등...


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A 기자, 그만해요~ 더 물어보면 의심 가요." 하고 선수를 쳤다.

그러자 A 기자도 내가 오전 일을 알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 네 하고는 서둘러 취재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조금만 더 늦게 우리 직원이 발견을 했었다면 그 기자에게 수사사항이 다 노출되어서 특종으로 보도되었을 것이고, 다른 언론사의 항의에... 근거도 없이 프랑스인을 의심했다고 외교적 문제로 비화에... 수사 모범 사례는커녕 비난 보도 일색이 될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위기 뒤에 기회라고 했던가?

덕분에 수사 보안에 대한 큰 교훈을 얻었다.

그 이후, 난 어떤 사유로든 잠시 사무실을 비울 때라도 항상 문을 잠근다.



다음 비하인드 스토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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