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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04. 2023

모든 경찰서에서는 가끔 탁구가 벌어진다. 핑퐁 핑퐁~

(수습기자를 위한 경찰출입 매뉴얼) 각 과별 사건 떠넘기기 관행

범인이 여성을 성폭행하고 신용카드를 훔쳐서 도주하였다.

그 후 편의점에서 훔친 신용카드로 먹을 것을 사고, 편의점 앞에 시동이 걸린 채 주차된 차량을 훔쳐 타고 도주를 계속하다 교통사고를 연발하였고, 결국 추적한 경찰 순찰차에 검거되었다.


이 사건 담당 부서는 형사과, 수사과, 여성청소년과, 교통과 중 어디일까?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돌아오는 경찰서 야간 당직.

과장급은 경찰서장을 대신해서 경찰서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상황관리관을 맡게 된다.

주로 112 신고 사건에 대한 총괄적인 관리·지휘를 하게 되지만,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인계되는 사건에 대한 담당 부서 지정 업무도 한다.

즉, 복잡한 사건은 담당 부서 선정이 쉽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경우 수사부서를 지정해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통 퇴근시간 10분 전인 5시 50분경 형사과, 수사과, 여성청소년과, 교통과 등 각 수사부서와 경찰서 안내, 청사 순찰 등 업무를 담당하는 당직자들의 집합이 112 상황실에서 있는데, 이때 상황관리관이 유의사항 등을 교양한다.

내가 항상 하는 교양 멘트 중 하나가 각 과별 사건 떠넘기기, 시쳇말로 핑퐁 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상황관리관입니다... (중략) 특히 형사, 수사, 여청 등 수사부서에서는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인계되는 사건 속칭 핑퐁 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고요. 담당부서 관련 분쟁이 있으면 상황실로 보고해서 조치받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사건이다.

어느 부서에서 사건 담당을 할까?


일단 성폭행 담당 부서는 여성청소년과,

절도는 형사과,

훔친 신용카드 사용한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은 수사과,

교통사고는 교통과이다.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면 이렇다.

일단 파출소에서 현행범체포 보고서, 수사보고 등 검거서류 일체를 작성하여 피의자를 데리고 경찰서로 간다.

형사팀으로 가면 데스크 담당 형사는 성폭행이 먼저 있었으므로, 여성청소년과로 가라고 한다.

그러면 파출소 직원들은 수갑 채워진 피의자를 데리고 4층에 있는 여성청소년과로 간다.

여청 당직 형사는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이 법정형이 더 높으므로 수사과로 가라고 한다.

이에 파출소 직원들은 1층 수사과에 갔다가 교통과도 갔다가 결국 다시 형사과로 돌아온다.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 부서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탁구에 비유하여 사건을 '핑퐁'친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떠넘기기 관행이 실제로 있었고, 언론에서 수차례 조명되어 경찰이 비난받기도 했었다.

- 핑퐁식 떠넘기기로 단속의지 자체에 의구심... 형사과, 수사과, 생활안전과 등이 서로 담당이 아니라고 떠넘기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2007. 1. 10. 쿠키뉴스)
- [단독] 형사과 vs 여청과…경찰 내부 실종사건 떠넘기기(2019. 1. 19. 채널A)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기 위하여 경찰서에서는 일단 당직 형사팀에서 피의자를 인계받고, 서류도 맡아 놓은 채로 각 부서 담당자 간에 법정형 높은 죄명 등 배당 원칙에 따라 협의를 거쳐서 담당 부서를 정한 다음 피의자와 서류 일체를 담당 부서에 인계토록 지침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사례와 같이 복잡다단한 사건은 부서별 담당자 간 협의로도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이 경우 상황관리관이 수사부서별 업무분장에 근거하여 지정하는 것이다.


주간에는 경찰서의 수사심사관실에서 지침에 따라 지정하고, 그래도 조정이 되지 않으면 배당조정위원회에 상정하여 각 부서별 위원들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담당부서를 지정한다.


이렇듯 시대의 광역화, 첨단화, 신속화 추세에 따라 사건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모든 경찰서에서는 탁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수사심사관실을 중심으로 원활한 조정이 고 있어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혹시 사건 떠넘기기 관행에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핑퐁 치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하고, 경찰서 청문감사인권관실에 언제든 문의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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