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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08. 2023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협박사건 수사 비하인더씬(1)

사건 초기 사건을 담당했던 강남서 형사과장입니다.

2023년 4월 4일 화요일.


우리 큰아들 입대일이다.

이 날은 평생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되어 버렸다.


아들이 군대 갔던 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전날 발생했던 강남 학원가 일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약이 든 음료를 시음 행사한다며 먹이고 부모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협박한 일명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이 접수된 날이기 때문이다.


군대 가는 아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귀가하는 길.

서장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과장님. 휴가 중인데 미안합니다. 아들 군대는 잘 보내셨어요?"


그리고는 특이한 마약사건이 접수되었으니 내일 출근하면 잘 좀 챙겨봐 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건 개요를 문자로 보내 주셨다.


아들이 어제 학원 앞에서 시음 행사한다는 음료수를 마셨는데, 오늘 모르는 번호로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와 아들이 필로폰 든 음료수를 마셨다며 협박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보는 유형의 사건.

마약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추어 부모가 대동하고 경찰서로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마약 간이시약 검사 결과 또한 양성!


일상화되다시피 한 보이스피싱 같은 사건으로 볼 수도 있으나, 마약 검사가 양성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건 내용을 정확히 파약해야 했다. 진술조서를 스캔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조서를 읽어볼 때만 해도 pet병과 같은 병에 필로폰을 희석하여 먹인 줄 알았다.


잠시 후...

서울 모든 경찰서의 마약사건을 관장하는 서울경찰청 폭력계 담당이 연락이 왔다.


수서경찰서 관내에서 마약이 든 음료수를 아들이 먹었다며 부모에게 협박한다는 진정서가 접수되었는데, 현재 수서경찰서는 납치 살인 사건 수사에 여념이 없으니 강남에서 사건을 대신 맡아달라는 연락이었다.


앗! 상황이 심각하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강남구를 관할하는 강남서와 수서서 관내에서 연쇄범죄가 발생한 것이다.


흔쾌히 맡아서 하겠노라고 하고는 남은 휴가를 취소하고 바로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그 4일 화요일 오후부터 7일 금요일까지 어떻게 4일이 지나갔나 모를 정도로 숨 가쁘게 수사를 진행했다.


강남, 학원가, 고등학생, 마약, 필로폰, 협박, 공갈 등등... 이슈가 이슈인 만큼 심야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24시간 내내 수백 통의 기자 전화와 문자가 몰려들었다.

범죄사실 특정, 수사방향 설정 등 수사지휘에 수사 대상자들 면담, 수사 내용 확인 등 수사진행사항 파악까지...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검거하여 실체를 밝히고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려 했었다.




4월 3일 오후 6시경 강남구 한 학원 앞 골목.

20대 설문조사원 남녀 한 쌍이 길 가던 고등학생 A군에게 기억력 상승과 집중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시판 전 음료수인데 시음행사 중이라며 OO제약 '메가 ADHD' 상표의 음료수를 나누어 주고는 맛을 평가해 달라고 했다.

설문 조사를 하면서 추후 추첨을 통해 상품권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님의 전화를 기재하도록 했고, 다음 날 오전 어머니에게 협박성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다.


두 건 모두 비슷한 유형의 신종범죄, 아니 사실이라면 역대급 전대미문의 강력범죄다!


수서서로부터 인계받은 사건에는 집으로 가져와 마시다 남은 그 음료수 병까지 있었다.

집에서 한두 병 만든 정도가 아닌 다소 투박하지만 공장에서 만든 듯한 제품화된 음료수 병이었다.

다행히 수사를 위한 실물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간이 시약검사를 위해 학생의 소변을 채취하여 검사를 했다.


종이컵에 담긴 소변을 스포이트로 받아 테스트기에 떨어뜨렸다.

한 방울... 두 방울...

필로폰이라고 하는 메트페타민( Methylamphetamine) 검사 결과 양성!!


신고 내용이 실.제.상.황.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음료 병에 남겨진 액체에 대한 검사도 양성!!


어떠한 음료수이길래 학생들이 의심 없이 마셨을까 싶어 냄새를 맡아봤다.

보통의 유산균 음료와 비슷한 하얀색 액체로 냄새 또한 비슷했으나, 다소 역한 냄새가 났다.


맛이 써서 한 모금 정도 마시고 뱉어 건강에 큰 이상은 없다고 했으나, 지금도 강남 학원가 한복판에서 우리 아이들이 마약인 줄 모르고 건네받은 음료를 받아 마시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고 아찔했다.


한시가 급했다.


미안하게도 막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던 형사들을 다시 사무실로 불러 내야 했다.

마약팀을 주무팀으로 하고 강력 4개 팀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금세 형사과 사무실이 살인사건 수사본부를 방불케 하는 사건 대응 체제로 편성되어 북새통이 되었다.


팀장 회의를 소집했다.

"다들 각 팀에서 진행 중인 중요 사건이 있을 줄로 압니다만, 사건의 파급력을 고려할 때, 최우선적으로 이번 마약 음료수 사건에 집중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건 발생 장소인 강남구청역과 대치역 인근에서 음료를 나눠줬던 남녀 2명, 여성 2명에 대해 cc-tv 확인을 통해 인상착의 파악이 급선무이므로 강력팀들을 급파했다.


cc-tv 추적에 전문인 형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발췌한 cc-tv 화면과 영상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동선을 역추적해 들어갔다.


하나 둘 용의자들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낼 때쯤...

수사와 더불어 대외 언론 창구 역할까지 책임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 사건 공개 여부에 대한 결단을 해야 했다.

추가 범행을 차단하고, 혹시 마셨을 학생들의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필로폰 든 음료 사진을 널리 알려야 했다.


일과시간이 지난 늦은 저녁 시간이었지만, 평소 취재 응대 차 전화로 친분을 쌓은, 아내와 동향 사투리를 써서인지 왠지 마음이 통하는(?) 강남서 출입기자 간사를 맡고 있는 연합뉴스 A 기자에게 상황의 긴급성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다.


"어휴, 과장님~ 밤늦게 고생 많으시네요. 빨리 알려야지요."

하면서 흔쾌히 간단한 사건 내용과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다.


오후 8시경 sns로 문자 풀(pool) 내용과 사진을 전송했다.

언론에 제공한 마약 음료 사진


<연합뉴스> "강남 학원가서 고교생에 '마약 음료수' 건넨 용의자 추적" 기사가 떴다.


<<<< 다음 편에 계속 >>>>


<다음 편 작성 중입니다. 주요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범행은 4월 3일 월요일 단 하루, 오후 6시 ~ 오후 10시 사이 강남구청역 인근, 대치역 인근 학원가 일대에서만 벌어졌습니다.
- 피의자들이 준비한 음료수는 총 100병이었으나, 실제 유포된 음료수는 18병입니다.
- 경찰이 36병을 압수했고, 나머지는 폐기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 현재까지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므로, 언론에 공개된 사항 위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 언론사의 속칭 단독 경쟁으로 다소 사실과 다르거나 오류가 있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언젠가는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겠다 싶어 틈틈이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 신속한 실체 발견 등 집중 수사를 위해 사건 발생 3일 후인 4월 6일 사건을 서울청 마약수사대로 이관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 글을 작성할 짬이 생겼습니다.

*** 기재해 놓은 메모에 기해 글을 작성하는 바람에 다소 매끄럽지 않은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수사 보안 상 일부 공개하지 못한 사실은 추후 사건이 종결되어 기사화되는 등 알려진다면 디테일한 부분까지 수정 보완할 수 있을 듯합니다.


*** 4. 7. 16:41경 마약 음료 제조책 길 모씨가 강원도 원주에서 검거되었습니다. 모쪼록 피해 학생들의 쾌유와 조속한 상선 검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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