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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ug 10. 2022

아들들아. 아빠가 죽으면 울지 말고 웃어라~

장인 어르신께서 소천하셨다.

지난주 장인 어르신께서 86세를 일기로 영면하셨다.


몇 달 전만 해도 하루 담배를 몇 갑씩 피우시면서도 건강 관리하신다며 매일 자전거를 두세 시간씩 타시곤 하실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일주일 정도 입원 후 퇴원하신 다음부터는 급격히 체력이 쇠하셨다.


그때부터 계단도 제대로 내려가시지 못할 정도로 근육이 빠져 댁에서만 머무셨고, 급작스런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가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

고집 세시고, 마음먹은 대로 다하시는 한 성격(?) 하시는 성격이셨으나, 항상 자식들 생각이 먼저셨던 장인 어르신이었다.
밤 10시 53분에 돌아가신 것도 자식들 상 치르느라 고생할까 봐 하루만 조문객 받으며 고생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큰 외손주 어릴 때는 혹여나 다칠까 모든 장난감 모서리에 스펀지를 덧대고 강력 접착제로 착 붙여 놓아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장난감으로 재탄생시켜주실 정도로 자상한 면도 있으셨던 장인 어르신.
그런 당신을 이제 다시는 뵐 수가 없다...


그동안 잘 지내시다가 이틀만 앓고 돌아가셨으니 이 또한 호상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한다.


평소 덤덤했던 아내도 (마음속으로야 형언할 수 없이 슬프겠지만) 큰 감정의 동요 없이 그렇게 아버님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강녕하셨던 터라 처음 치러보는 장례식...

빈소부터 화장터, 장지 예약 등 모든 것이 생소했고 자정 즈음 돌아가셔서 3일 장이 아닌 2일 장 분위기가 되어 마음이 다급했다.


상조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부랴부랴 빈소를 경찰병원 장례식장에 차렸고, 아내의 직장동료, 내 사무실 동료들의 문부터 조문이 시작되었다.


생각 외로 많은 친구, 선후배, 직장동료, 친척, 지인분들의 조문과 근조화환, 조문 문자 등으로 너무도 큰 위로를 받았고 감사했다.

그 외 여러 느낀 점이 많았지만 그중 우리 아들들...


스무 살 큰 아들은 부쩍 어른 티를 내면서 예약 가능 빈소 확인부터 일조를 하더니, 자원해서  1 둘째와 같이 접수대에서 부조금을 받겠다 한다.


둘째는 기숙사에서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는 집에 대기하던 초등 6학년 막내 복장을 검은색으로 맞춰 입히고 식장에 도착해서 자기도 상복을 입겠다고 한다.


막내는 숙연하게 식장에 도착해서는 뭘 하면 되겠냐고 해서 조문객들 신발 정리를 맡겼더니 군말 없이 신발 정리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화장터로 가는 발인 시각.

관을 들어줄 6명의 남자 중 1명이 부족했는데 신부님이 꿈인 큰아들의 친구 L이 선뜻 아침에 와 주었다.


화장터에 도착해서 화장로로 들어가는 관을 배웅하다 검은색 블라인드가 내려오며 '화장 중'이라는 안내 사인을 보고는 약 두 시간의 대기시간을 보내려 식당으로 내려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이라 그런지 첫째와 L, 둘째는 커피 내기 오목 토너먼트를 했다.


나 또한 먼 길까지 와 준 L이 고마워 커피를 내가 살 요량으로 토너먼트에 참여했다.

둘째와 내가 3, 4위전으로 밀렸다.

수십 수 만에 내가 5-3을 만들어 승리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항상 아이들과 해 왔듯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벌리고 머리를 치켜드는 세리머니를 했다.


그와 동시에 신의 한 수(?)를 본 큰아들과 L은 우와~ 감탄을 내뱉었고...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지금 뭐 하는 거야?? 버럭 하며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차!!

순간 정신줄을 놓았나 보다...


미안, 미안해하고는 커피를 사 오라며 둘째에게 신용카드를 주었다.(이겼음에도 당황해서 내 카드를 주고 말았다.)


고생해 준 L이 커피를 다 마시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택시를 태워 보내주었다.


첫째와 둘째를 불러내 셋이 긴급 가족회의를 했다.


일단 장례식 치러 보니까 너희들이 참 듬직하더라며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아까 있었던 소동(?) 관련해서 떠오른 이야기를 했다.


물론 고인을 위해서는 엄숙하게 장례식을 진행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슬퍼하거나 우울해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자 아이들도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득하다고 했다. 성격대로 다 맞추어 주신 외할머니의 희생도 있었지만, 외할아버지께서는 잘 지내시다  고통 없이 돌아가신 것 같다고...


갑자기 나도 언젠가는 장례식장의 고인에 명단을 올릴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 그동안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아이들도 나름  커 주지 않았는가?

아이들도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했다.


자신 있게 아들들에게 첫 유언을 했다!


아들들~ 아빠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울지 말고 웃어라~

그동안의 아빠와 추억을 떠올리며... 인생을 멋지게 사시다가 간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하면서 말이야. 

아빠도 그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게라며 아이들 모르게 다짐도 했다.



그렇게 1시간 반 정도 만에 화장이 끝나고 포천 봉안담에 유골함을 잘 모셔드리고는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났다.


아버님. 그동안 힘들었던 일 모두 다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편히 쉬세요.


아버님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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