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 때문에 비보이들만 보면 병역비리가 생각나~!"
우리 집 아이들은 우연히 비보잉을 보게 될 때면 저렇게 춤보다는 병역비리가 생각난다며 웃음 짓곤 한다.
2010년 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우리 수사팀은 소문으로만 떠돌던 연예인들의 정신병, 특히 현재는 조현병이라 불리는 정신분열병을 위장한 병역면탈 비리 사건에 대한 내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 유명 가수 S, K, J를 비롯한 탤런트 등 연예인들이 정신분열병을 위장하여 병역을 면제받곤 했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있었는데, 단순한 소문이나 풍문만으로는 수사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우리 팀의 에이스 H 형사가 의미 있는 첩보를 입수했다.
한 비보이 그룹 멤버의 절반 이상이 정신분열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것이다.
'정신분열병이 전염병도 아닐진대... 같은 정신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감이 왔다!
곧장 내사에 착수했다.
각종 문헌을 연구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충실한 내사보고서를 작성하여 그룹 멤버들의 병적증명서, 병사용 진단서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수사기록 검토 끝에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여 영장을 발부했다.
관련 자료들을 확보하여 분석에 들어갔다.
멤버 9명이 면제를 받았는데, 입원기간을 제외한 1년 여 치료기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멤버 대부분이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었던 점 또한 의심스러웠다. 심지어 그 기간 수차례에 걸친 출입국 기록이 있었고, 해외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었다.
'정신분열병 환자가 운전면허를 따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 비보잉을 하고,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최초의 정신병 위장 병역면탈 사건에 대한 수사인만큼 누가 보더라도 정신병을 위장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게 수사를 진행했다.
범죄사실이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고 판단된 시점!
멤버들에 대하여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일사불란하게 체포해 왔다.
그 간의 행적을 샅샅이 훑어 작성한 완벽에 가까운 수사기록에 짐짓 놀란 청년들.
멤버 모두 병역비리 사실을 깨끗하게 다 시인했다.
인터넷과 서적을 통해 정신질환의 증상을 미리 학습하는, 족보처럼 내려오는 연예계의 그 비법을 따라 했다며 말이다.
범행 수법은 이랬다.
(수사결과로 드러난 범행수법을 병무청에 통보하여 신검 시스템이 개선되었고, 이제 이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
가족들과 짜기도 하고 가족들을 속이기도 했는데, 일주일 정도 방에서 나오지 않고 그 기간 동안 씻지도, 잘 먹지도 않는다. 특히 조현병 증상인 "누가... 내 머리를... 자르려 해요.", "누가... 나를 감시하고... 미행해요." 등등의 혼잣말을 줄기차게 하면서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는 척한다.
일주일 정도 후 가족이 대동하고 정신병원을 방문하여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하면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며 입원 치료를 권유받는다.
한 달 정도 입원한 다음 가족이 찾아가 금전적 문제로 더 이상 입원이 어렵다며 통원치료를 요구하고, 그 후 6개월 ~ 2년 동안 통원치료를 하며 약물을 처방받는다. 물론 처방약은 먹지 않고 정상 생활을 한다.
이 정도 되면 서류상 완벽한 조현병 환자가 되는 것이다.
즉, 6개월 ~ 2년 동안의 정신병 치료 경력, 그중 1개월 입원 치료, 그 후 꾸준한 약물처방 등 형식적으로는 정신병 환자가 명백하기에 규정에 따라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순차적으로 청년들을 조사했다.
불법인 줄은 알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자신이 비보잉을 멈추면 생계유지가 어려워 부득이 병역비리를 저질렀다는 멤버, 한창 잘 나갈 때인데 군대 2년 다녀오면 더 이상 춤을 못 추게 될 것 같아 범행했다는 멤버 등...
각자 사연은 딱해 보이기도 했지만, 엄연한 헌법 상 병역의무를 저버린 행위이다.
굳이 청년들의 노력을 가상하게(?) 볼 수 있었던 점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차라리 군대를 가지, 다시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즉, 입원 기간 동안 강제로 치료약을 먹다 보니 하루 종일 멍했고, 약을 먹는 척하고 뱉고 싶어도 혀 밑이나 입안을 일일이 체크하기 때문에 억지로 약을 먹어야 했으며, 철창살 안에 갇혀 춤은커녕 마음대로 움직일 수 조차도 없어 진짜로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고...
수사가 마무리된 후, 수사사항을 병무청에 통보하여 멤버들에 대해 병역의무를 부과토록 하고 제도 개선에도 일조했다.
유사 범죄 예방을 위해 보도자료도 배포하고 언론 브리핑을 했다.
그때 TV 뉴스에 나온 아빠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안하게도 비보잉을 볼 때면 멋진 댄싱에 감탄하기보다 '비보이 = 병역비리'로 각인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