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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Jan 24. 2023

사건 담당 형사는 절대로 합의하라고 시키지 않습니다.

지인을 때려 폭행사건으로 입건된 피의자 A.

생전 처음 끌려간 경찰서라 겁도 나고 아는 것도 없어서 조사가 끝난 후, 담당 형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피의자 A: 제발 도와주세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다른 곳 가서는 절대 이야기 하지 않을게요.

담당 형사: 사정이 워낙 딱하시니 말씀드립니다. 합의하는 게 좋습니다. 반의사불벌죄라고 해서 상대방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이 되지 않습니다.


조언에 감사해하며 귀가한 피의자 A.

피해자인 B를 찾아가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 담당 형사가 합의하고 오라고 시켜서요."


이 말을 들은 B는 합의를 거절하고는 언론사 기자에게 제보를 한다.

담당 형사가 합의를 종용했다고 말이다.


다음 날 이렇게 기사화된다.


'폭행 사건 담당 경찰관, 피의자와 유착 의혹 - 합의 종용 물의 야기'



실제상황을 감안한 픽션 설정이다.


경찰서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실제로 비일비재하다.

평소 경찰서 신세를 질 일이 없는 선량한 시민 입장에서는 당장 담당 형사에게 여러 가지를 물을 수밖에 없다.

향후 수사진행 절차, 구속되는지, 전과 기록으로 남는지 여부, 유리한 조치 등등 말이다.


이때, 기본적인 절차에 대한 설명을 제외하고, 오해를 사지 않는 경찰관의 가장 현명한 답은...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에게 여쭤 보십시오."이다.


하지만, 변호사 상담 비용이야 그렇다 쳐도 변호사 선임 비용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기 때문에 대다수의 서민들은 법률사무소 방문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담당 형사에게 자문을 구하게 된다.

이 경우 법을 잘 모르는 일부 민원인 또는 경찰을 볼모로 악용하려는 민원인들로 인해 경찰관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가 그 단적인 예이다.


나 또한 실무자로서 피해자, 피의자 모두에게 법률 조언을 해주곤 했다.

피해금 일부를 변제받고, 고소를 취소해 준 다음 나중에 잔금을 받는 시쳇말로 '외상 합의' 제의를 받은 피해자가 이런 합의에 응해야 하는지 물으면, 고소 취소 이후 잔금을 주지 않는다고 하여 고소 취소를 번복하거나 다시 고소할 수도 없으니 신중히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 하거나...


처벌을 면하거나 감경받으려는 피의자에게는 합의하는 게 유리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이를 악용하거나 곡해하는 민원인 때문에 도와주려는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입곤 했다.


피해자를 찾아간 피의자가 경찰관이 합의하고 오라고 시켰다고 하는 바람에 피해자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고, 어떻게든 일부라도 변제하고 고소 취소를 받으려 하는 피의자가 피해자로부터 경찰관이 외상 합의해 주지 말라고 했다고 하여 피의자의 원성을 듣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민원인들은 감사해했다.

조언 덕분에 일부라도 변제를 받아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워하던 피해자, 합의 이후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피의자, 무고성으로 고소를 당했다가 조언 덕분에 합의하지 않고도 무혐의받은 피의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조사 이후 법률 조언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변호사 후배에게 했다.


"형님 같은 분 때문에 요즘 법률시장이 어렵습니다. 변호사에게 상담받으러 가라고 해주세요~" 라며 엄살을 떨었다.


경찰생활 26년 차.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약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 중이다.


그래도...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법률문제는 변호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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