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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23. 2022

역시 형사는 순발력이지!

모텔에서 성관계 중인 유부녀를 촬영하여 돈을 뜯어내려 했는데...

2003년 12월 24일 오후, 얼른 퇴근하고 아내와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겁게 보내야지 하는 생각도 잠시, 가십거리로 등장할 만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다.


유부녀인 피해자 A씨가 쭈뼛쭈뼛하며 강력반 사무실을 방문했다.

몇 달 전 인터넷 채팅으로 한 남자를 만났는데, 수치스럽고 이상한 일이 생겨 신고를 하고 싶다고 한다.


A씨는 그렇게 B씨를 만나 성관계까지 맺는 사이로 발전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며칠 전 낮에 모텔에서 샤워를 하고 알몸 상태로 B씨와 같이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플래시를 연신 터뜨리면서 사진을 찍고 휙 나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창피하기도 하고 겁도 났으나, B씨는 괜찮을 거라며 안심을 시켰다고 한다.


며칠 후 B씨가 하는 말이 그때 사진을 찍은 자가 협박 전화를 걸어왔는데 당시 찍은 나체 사진들이 있으니 사진을 돌려받으려면 2,000만 원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1,000만 원을 조달할 테니, A씨 더러 나머지 1,000만 원을 준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A씨의 진술을 듣다 보니, B씨가 지인과 미리 짜고 A씨의 돈을 갈취하려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A씨에 따르면 불륜이기 때문에 항상 모텔에 가면 방문이 잠겼는지 여러 번 확인하고 샤워 후 성관계를 하곤 했는데, 그날은 그 범인이 시정장치를 여는 움직임도 없이 바로 들어왔고, 아무 말도 없이 사진만 찍고 나갔는데, B씨에게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A씨 더러 돈을 준비했다며 자연스럽게 B씨를 만나도록 한 후, 현장에서 검거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나온 B씨를 검거하고, 휴대폰을 압수하였다.

B씨를 추궁하였으나, 자신도 피해자이고, 공범은 더더욱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통화내역을 발췌하여 공범을 특정하기에는 다음 날이 휴일이라 통신회사와 협조가 되지 않아 시간이 촉박했다.


범행 시각 전후로 통화한 자가 공범일 가능성이 크므로, 휴대폰 통화내역을 살펴보았으나, 이미 그 당시 내역은 다 삭제를 한 상황.

어떻게 공범을 특정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끝에 갑자기 좋은 생각이 번갯불처럼 떠 올랐다.

자주 통화한 사람이 공범일 것이라는 생각에 통화내역에서 최근까지 가장 많이 통화한 사람에게 B씨의 휴대폰으로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우 반갑게 “여보세요~” 하고 받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 또한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여보세요, 혹시 이 휴대폰 주인 아세요?”

그렇다. 휴대폰을 주운 것처럼 연기를 했고, 공범은 거기에 걸려들었다.


“아, 예. 제 친구 휴대폰인데요.”

“그러세요? 이 휴대폰을 영등포역 근처에서 주웠거든요. 그래서 전해 드려야 하는데 어디가 좋을까요?” 했더니, 영등포역이 좋겠네요 했다. 자기가 검거될 장소를 스스로 정하는 셈이었다.


“영등포 역에서 6시쯤 보면 될 것 같은데요.”

“아, 잘 되었네요. 저도 이따가 그 시간쯤에 영등포역 가거든요. 역에 가서 전화드릴게요!”

하고는 수사팀 막내 김 형사와 같이 출동했다.

김 형사와 나는 당시 환상의 캐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둘이 검거하러 나가면 100%라고 할 정도로 나가기만 하면 항상 검거를 해왔다. 김 형사는 현재 서울 모 경찰서에서 베테랑 고참 반장으로 근무 중이다.


30여 미터 전에 공범으로 추정되는 자가 걸어오고 있었고, 확실히 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역시 그 공범 맞다. 휴대폰을 귀에 대고 받는 순간 그를 검거했다.

공범은 순순히 범행을 시인하였으나, 당시 찍은 사진들은 모두 버렸다고 해서 압수하지 못했다.

<공범 검거 후 확인된 수사결과>

B씨와 공범은 A씨를 상대로 돈을 갈취하기 위하여 궁리하던 중, 나체 사진이 찍혀 협박을 당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돈을 갈취하기로 하였고, B씨가 A씨를 만나는 모텔을 사전에 공범에게 알려 주었다.

정확한 호실은 투숙 이후에 문자로 알려 주기로 하였고, 기습하는(?) 시간은 A씨와 만나서 샤워를 하는 도중에 B씨가 공범에게 전화를 걸어서 신호를 2~3번 가게 하고 끊으면 그 시각을 들이닥치는 시간으로 정했다.

그리고는 계획된 대로 들이닥쳐 줄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가, 공범이 들이 닥쳐 사진을 찍고는 나중에 협박을 당했다고 1,000만 원씩을 같이 부담하자고 했던 것이었다.

여죄를 더 추궁하였으나, 다른 여죄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기지를 발휘해서 공범까지 검거하는 바람에 다행히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불안해하던 A씨도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었다.


역시 형사는 순발력이다.



@ 슬기로운 형사생활(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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