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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20. 2022

현란한 말솜씨의 절도범? 너 보다는 우리가 한 수 위!

겨울의 문턱에 접어든 2008년 11월.

우리 수사팀은 약 5개월 동안 서울, 경기, 인천, 강원 지역 편의점 종업원을 상대로 23회에 걸쳐 1,2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네다바이 수법으로 훔친 절도 등 전과 5범인 34세의 유 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기도 수원의 널찍한 마당이 있는 한 빌라 담벼락 근처에 주차를 해 놓고 잠복을 하고 있었다.


어렵게 피의자를 특정한 터라 드디어 사건을 끝내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의 고생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유 씨는 증거를 남기지 않아 특정하는데 애를 먹었다.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특히 여자 종업원을 대상으로 범행을 하여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 눈썰미 좋은 김 형사가 동일수법 전과자 시스템에서 유씨를 특정했다.
 
이 시스템에는 수법 범죄로 구속된 자의 사진자료가 있는데, 이 사진과 cc-tv로 확보한 용의자의 모습을 하나하나 대조하여 피의자를 특정한다. 
(유 씨는 서점에서 문화상품권을 상습적으로 훔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받은 전과가 있었다.)


유 씨의 범죄수법은 이랬다.
여자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는 편의점에 가서 명절 선물을 한다면서 음료수 몇 박스를 주문한다.
이때,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상당의 문화 상품권도 산다면서 그 박스 안에 넣게 한다.
그다음 추가로 이 담배, 저 담배를 시켜서 정신 없게 하고는 담배를 꺼내려 돌아서 있을 때, 몰래 상품권 만을 빼내어 훔친다.

그리고는 근처에 세워둔 차가 견인될지 모르니 금방 다른 곳에 주차를 하고 오겠다든지, 은행에 가서 돈을 뽑아 오겠다든지 하고는 도주했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 중에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서 변상조치를 했던 학생도 있어서 더더욱 피의자를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복한 지 1시간 여...

2층 출입구 쪽으로 나와 유유히 담배를 피우는 유 씨를 발견하고, 김 형사가 빌라 입구를 물어볼 겸 형사 티(?) 안 나게 단지 “아저씨~”하고 불렀을 뿐인데, 유 씨는 감이 왔었는지, 대답도 없이 잽싸게 다시 출입문을 닫고는 안으로 쌩하고 들어가 버렸다.


순간 김 형사와 박 형사는 담을 넘어 그 2층으로 쫓아 올라갔고,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건물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유 씨는 건물 뒤편 2층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본 채로 하반신을 절반쯤 창문 밖으로 내려놓은 상태였다. 뛰어내렸다가는 사상 우려가 있어 다시 들어가도록 기지를 발휘해야만 했다.


- 아저씨, 왜 그러세요? 저희는 A씨를 만나러 온 건데요.  

- 아, A씨 만나러 오신 거라고요?   

하더니 다시 하반신을 창문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아무리 범죄꾼이라 할 지라도 우리 경찰이 한 수 위라는 걸 느낀다.

사전에 등기부등본으로 건물주 A씨를 파악해 놓은 상태여서 그를 만나러 온 거라고 했다. 


유 씨는 친절하게도 2층 출입문을 열어 주었고, 그때서야 우리는 그를 상습사기 혐의로 체포할 수 있었다.

당시 유 씨는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허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허리디스크 환자도 검거가 되는 다급한 상황이 되니까 2층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가 보다 생각했었다.
유 씨를 체포하여 조사 후, 확인한 자세한 수법은 다음과 같다.

유 씨는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지만, 평소 추리소설, 에세이집 등 책을 많이 읽어 말솜씨가 좋고 해박한 지식을 갖췄다.

또한 TV 범행 재연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수법을 터득하여 2003년부터 상품권을 전문적으로 훔쳐왔다.
 
특히 편의점에 들어가 남자 종업원이 있을 때는 그냥 나왔고, 여자 종업원만을 상대로 이런저런 농담을 건네 안심시킨 뒤 상품권을 훔친 다음에는 “주차된 차량을 빼러 간다”,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겠다”, “은행에서 돈을 뽑아 오겠다”며 각종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자리를 뜨는 등 주도면밀한 수법을 사용했다.


당시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었고, 편의점 종업원들이 추가로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인터뷰를 했었다.


서초경찰서 천현길 경감은 “편의점에서 다른 물품과 다량의 상품권을 한꺼번에 구입하는 사람을 주의해야 모방 범죄를 막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081128001242



@ 슬기로운 형사생활(20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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