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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24. 2022

경찰은 '뼈다구 값'을 받았습니다.

슬기로운 형사생활

지금은 없어진 비리이기에, 한 때는 경찰의 치부이기도 했던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2003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강력반장을 하게 되었다.  

당시 형사들 중에는 경위 진급해서 강력반장으로 퇴직하는 게 꿈이라는 형사도 있을 정도로 강력반장은 대단한 보직이었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각종 형사사건 모두가 신기했고, 사건 다운 사건도 많아서 현장을 많이 뛰다 보니 형사과장님은 너는 형사가 아니라 반장이라고,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챙기거나 상황관리를 해야지 왜 자꾸 나가고 하실 정도였다.

당시 발생사건 중 하나가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범행인 이문동 여성 살인 사건이 있었다. 변사 현장인 중국집 안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불시에 칼을 맞아 근처 중국집으로 피신해 가서는 살려주세요 하고는 쓰러져 유명을 달리하였다.


특히 법의학에 관심이 많았었기에 변사현장은 이론을 적용해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현장출동을 하곤 했다.


그런데...

변사 현장에는 가끔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면, 관내에 이런 병원이 있었나 할 정도로 생소한 이름의 병원 구급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변사사건 다음 날.

장례식장 관계자가 노~란 봉투를 들고 사무실에 와서는 모 형사에게 뭐라 뭐라 말하고는 봉투를 놓고 갔다.


'뼈다구 값이다!'

  ** 뼈다구 : '뼈다귀'의 방언


사실 형사를 처음 하게 되면서 난 참 운이 좋았다.


고참 형사들이나 다른 반장 입장에서는 몇 년 내지 몇십 년 나이 어린 강력반장이 왔기 때문에 무시하거나 배척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예뻐라 해 주시고, 잘 봐주셔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심지어 이러이러한 비리가 내부에 있으니 젊은 반장으로서 타파를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신 분도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뼈다구 값이었다.


주로 장사가 잘 안 되는(?) 장례식장 관계자와 형사 간에 커넥션이 있어서 형사가 변사 신고를 받으면 몰래 그 장례식장에 연락을 해주고, 나중에 알선료를 받는 개념인데, 변사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부르기도 민망한 뼈다구 값이라고 하는 그 돈을 받는 비리였다.

연락책이 강력반 형사일 수도 있고, 112 상황실 경찰관일 수도 있다. 실제로 112 상황실 경찰관이 사건 관련 커넥션으로 인해 처벌된 사례도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40528061600004?input=1179m


그러다 보니 변사 현장에 거의 동시에 구급차가 2대 오기도 했었고, 하루 3건의 변사 현장에 3번 모두 형사 보다도 더 먼저 구급차가 와 있는 걸 본 신기한(?) 경험도 해 봤다.


이렇게 시신을 모시다 보니 나중에 유족들이 원하는 곳으로 다시 옮기는 경우도 있었고, 먼 곳으로 옮겼다고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들 대체로 변사 상황에서 경황이 없기 때문에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곤 했다.


문제는 결국 그 과정에서 발생한 운구, 안치 비용 등 유족 부담비용에 그 알선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형사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했을 수도 있으나, 관행적인 그 돈을 형사가 개인적으로 안 받는다고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민이 되었다. 


다들 나보다 경력도 많은 분들이고... 관행적 비공식 수사비(?)를 내가 너무 나서서 없애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들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하겠지 등등.


그러다 결심을 했다.  

우리 반에는 나보다 어린 형사가 2명이 더 있었다. 그래서 자신감도 있었다.

며칠 후, 반원 회의를 소집했다.


- 저... 말씀드리기 좀 곤란한데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2014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의 유명 대사인 이 말을 난 그 보다 11년 전에 이미 했다.


- 우리가 당장 수사비 좀 모자라도, 수사를 좀 더 열심히 해서 수사지원비 받을 수 있으니까요.

- 그 뼈다구 값 말입니다. 그거 다 유족들 부담되는 돈인데, 안 받으면 안 되겠습니까?

당시에는 형사 하려면 노트북, 프린터 등 일단 몇백만 원 쓰고 시작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지원 경비가 부족했다.
한편, 중요사건을 해결하면 사건 경중에 따라 몇십만 원 상당의 수사지원비가 지급되었다.


반원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말을 계속 이어갔다.  

- 그래도 이게 일종의 비리이고 잘못되면 우리가 다칠 수도 있는데, 제가 임의대로 받지 말자고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의견을 좀 구하려고 합니다.


잠시 정적...

최고참인 데스크 김 부장님이 어렵게 입을 떼어 그렇게 합시다라고 호응을 해 주시자 다들 그렇게 하자고 했다.  


더 늦기 전에 막내 형사 둘에게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 혼자 가서 봉투 반납하면 배달사고 날 수 있으니까요, 두 분이 같이 가셔서 꼭 이렇게 전하세요. 이번에 새로 온 반장이 아주 X 같은 넘이 와서요. 앞으로 뼈다구 값 안 받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반은 그 돈을 받지 않았고, 다른 경찰서에서도 점차 사라졌는데, 2011년까지 모 경찰서에서는 그러한 비리로 대대적인 감찰, 수사 후 몇몇 경찰관이 구속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010902


그 후, 경찰에서는 이러한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 순번제 대책을 수립하였다.


즉, 1차적으로 유족이 희망하는 장례업소로 운구하고, 확인이 어려우면 순번에 따라 장례식장이 운구를 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1110262105201#c2b


이러한 어두운 면에 대한 경험 또한 나를 진정한 형사로 자라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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