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며칠 동안을 컴퓨터 모니터만 하루 종일 쳐다보면서 엔터를 연신 쳐대던 윤 형사... 며칠 지나지 않아 컬러 프린트 한 동일수법 전과자 하 모 씨(52세) 사진 한 장과 cc-tv에 찍힌 사진을 같이 보여주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팀장님 좀 닮지 않았습니까?”
역시 눈썰미 좋은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닮은 정도가 아니라 딱 범인이었다. 휴대폰 통화내역 등 다른 수사자료와 맞추어 범인으로 특정하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실시간 위치 추적 결과, 안양에 거주하는 피의자는 심야시간에 포터 차량을 타고 안양에서 서울로 와서 범행 후, 다시 안양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이동했는데, 그 당시는 기지국을 중심으로 반경 500m 내지 1km까지 추적이 되므로 검거가 쉽지가 않았다.
안양에서 이동하는 것이 포착되면 우리 수사팀은 방배동 일대 차량이 주차될 만한 곳을 찾아 수색했는데, 차량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번 허탕을 친 후, 윤 형사는 며칠만 시간을 달라며 박 형사와 야간에 잠복을 들어갔고, 다음 날 윤 형사는 하 씨를 검거해 왔다.
검거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실시간 기지국 인근을 수색하던 도중 우리가 예상할 수 없었던 - 역시 수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범행 장소로부터 8차선 대로변 건너편 골목길에서 포터 차량을 발견하였고, 그 옆에 승용차를 대 놓고 피의자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피의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차 안에 누워서 기다린 지 2시간 여.
피의자가 나타났다.
피의자는 또 다른 한 집을 털었는지 장물이 담긴 종이가방을 들고 포터 차량으로 유유히 돌아왔다가는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돌아갔다가 한참 후에 다시 나타났고, 차에 타려는 순간 체포했다고 한다.
사무실에 체포되어 온 피의자에게 물어보았다.
- 선생님? 그때 왜 차에 바로 안 타고 돌아갔다가 다시 왔나요?
- 예전에 경찰에 잡혔을 때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요, 어제도 왠지 쎄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는데, 차에 타려는 순간 검거가 되었다고 한다.
범죄꾼들은 잡히는 순간 그런 쎄한 느낌이 있나 보다.
피의자를 구속한 후, 여죄 수사를 하면서 화려한 절도 기술에 혀를 내둘렀다.
장갑만 끼고 가스 배관을 타고 10층까지도 거뜬하게 올라가서는 시정되지 않은 창문을 열고 침입하여 범행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지갑에서 현금만 빼내고 도주하기도 하였고, 빈집으로 확인되면 절도 후 당당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와 도주하는 식으로 절도를 하였다고 한다.
하필 피해자 중에는 친정어머니가 다녀간 날 밤에 남편의 지갑에서 수십만 원의 현금이 사라져 남편은 장모님을 의심하고, 부인은 친정어머니가 그럴 리 없다고 하여 부부싸움을 하곤 했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자는 절도 당한 줄도 몰랐었는데, 피의자의 범행이었다고 하자 부부 싸움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오해를 풀게 해 줘서 연신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또한, 그렇게 배관을 타고 올라가다가 피해자와 마주친 적은 없었냐고 했더니, 새벽에 가스배관을 타고 몰래 올라가던 중 5~6층쯤에 시정되지 않은 주방 창문을 스르르 여는 순간, 설거지를 하던 피해자와 눈이 딱 마주쳐 피해자는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피의자도 놀라서 배관을 놓쳐 떨어질 뻔했다가 간신히 다시 내려와서 도주한 적도 있다고 했다.
피해자는 그 때 아마 '전설의 고향'처럼 귀신이 창문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수많은 범죄 유형 중에서 개인적으로 이러한 침입절도 사건을 가장 위험하고 중하게 본다. 침입 절도는 강도와 달리 빈집 등을 상대로 몰래 침입해서 절도를 하나, 범행 도중 피해자를 마주하게 되거나 하면 언제든 강도로 돌변하거나, 강도상해, 강도살인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