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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17. 2022

강력팀 형사의 금연 노하우

나의 금연 일기

고교 시절 모범생이었던 나는 담배는 불량 청소년들이 피우는 것이고, 굳이 피운다면 성인이 되어야 피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대학 입학 후, 1학년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두고 헤비 스모커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던 박 모 동기와 이야기하던 중 호기심이 발동하였고, 당시 유행했던 '글로리'라는 담배를 한대 피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핑 도는 느낌에 쓰러질 뻔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흡연자가 되어 하루 한 갑은 기본이고, 술자리에서는 갑도 피워 봤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전혀 건강에 이상이 없었고, 오히려 대인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핑계에 가까운 그런 이유를 대면서 15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

또한 경찰이라는 직업 상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으레 흡연이 인정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서 더더욱 담배를 즐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2007년 여름, 대학 동기 H가 ‘STOP SMOKING’ 책을 보고 금연했으니 혹시 금연 생각 있으면 사보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전혀 금연 생각이 없었기에 무시했다가 며칠 후, 다른 책 주문할 때 혹시나 싶어 그 책까지 같이 주문을 했다. 그렇게 그 책은 책장 속에 6개월 넘게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매년 1월 1일이 되면 한해 목표를 세우곤 하는데, 2008년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목표를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5일이 지나 불안해하던 나에게 책장 속에 먼지를 뒤집어쓴 ‘STOP SMOKING'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 흔한 금연을 한해 목표로 해야 한단 말인가?'

'금연 필요성도 못 느끼고 오히려 장점이 더 많은 담배를 끊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선뜻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흡연자들이 다 그렇겠지만, 반대로 그 책을 읽으면 끊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담배를 다시 피우지 못한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책을 펼쳤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같은 흡연자였던 20년간 매일 4갑씩 피우던 영국 저자의 이야기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책에는 그 흔한 흡연으로 인한 폐암 사진 한 장 없고, 오직 글만 있다.

마음에 쏙쏙 박히는 말로 인해 책 덮는 순간 열 개비 이상 남은 담배를 과감하게 비틀어 휴지통에 던져버리고는 그날 바로 난 비흡연자가 되었다.

금연 보조제 없이도 가능하다며 금연은 의지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했었다. 나 또한 금연 패치, 금연껌 등 보조제 없이 금연에 성공했다.


너무도 신기하여 지인 30여 명에게 책을 선물했고, 쉬엄쉬엄 읽지 말고 단박에 읽으라는 내 조언과 함께 책을 읽은 몇몇 지인들은 금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비흡연자가 된다는 불안감에 책을 띄엄띄엄 읽었거나 읽지 않은 지인들은 계속 피우고 있고, 심지어 그 책에서 강조한 "금연 이후에는 시험 삼아서라도 절대 피우지 말라"는 말을 간과한 몇몇 지인은 반짝 비흡연자 대열에 들었다가 다시 흡연자가 되었다.

이건 나도 경험했다. 금연 6개월 후 술자리에서 담배를 강제(?)로 피운 적이 있었다. 아무 맛도 없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끊은 줄 알았던 담배 생각이 화~악 밀려왔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 했다.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이런 내 선한 영향력으로 금연했던 지인은 몇 개월 후 다시 담배를 피우다가 폐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하여 지금은 완치되었지만, 나에게 엄청 미안해했다. 덕분에 금연했을 때 끊었어야 했는데 하면서 말이다.




부연하자면 절대 책 광고 아니다. 그 저자나 출판사와 나는 전혀 관계가 없고, 단지 금연 효과에 매료된 마니아일 뿐이다. 선물한 책도 다 내 사비로 구입했다.


책 내용은 이렇다.


담배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마약이다.

당신은 기호식품을 즐기는 게 아니라, 담배의 노예이다. 그래서 못 끊는 거지, 당신이 담배를 언제든 끊을 수 있는데 안 끊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전제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담배의 노예가 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경우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즉, 친구들끼리 바닷가에 콘도를 잡아서 놀러 간다고 치자.

흡연자는 열이면 열 첫 질문이 "거기 베란다 있냐?"이다. 실내 흡연 안 되는 콘도에서 저녁에 술 한잔 하다가 담배 피우려는 생각 먼저 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우와, 바다 가면 좋겠다, 콘도에서 바다 바라보는 장면 등등 바닷가 가서 놀 상상을 먼저 한다.


나 또한 담배를 끊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그 당시 둘째가 돌이 갓 지났을 무렵인데, 아내가 우리는 언제나 되어야 편하게 영화 보러 갈 수 있는 거냐며 투정 부리듯이 말했었다.


생각해 보니 전에는 영화, 연극도 많이 보러 갔었는데, 첫째 태어난 2003년 이후로 몇 년간 영화를 보지 못했었다.

미안하기도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남산에 있던 자동차 극장에 영화 보러 갔던 기억이 났다.

아이들 데리고도 영화 볼 수 있는 그곳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디에 주차해야 가족들과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영화를 볼까 했을 건데, 나는 좌우 사이드 자리를 클릭하면서 어디에 차를 짱 박아야 중간에 잠깐 나와서 한대 빨아도(?) 뒤에서 "어이, 앞에 안 보여요.", "비켜요!" 등등의 비난을 안 받을까 생각하면서 이 자리, 저 자리 클릭질을 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책 내용 그대로 난 담배의 노예가 되어 정상적인 사고가 안되고 있었다.

금연 이후에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흡연자셨던 그 기사분께서는 어느 날 집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러닝셔츠를 벗는 순간 담배 쩔은 내를 확 느끼셨는데, 그날 바로 담배를 끊으셨다고 하셨다.
이렇듯 어떤 계기가 맞아떨어지면 금연이 더 수월해진다.


그리고 가장 핵심 포인트!

그 책에서는 그러면 며칠이 지나야 담배를 끊은 것인가요 하는 질문에 하루 만에 끊는 것이 될 수도 있고, 1년이 지나도 못 끊은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즉, 의지와 생각으로 담배는 끊을 수 있는데, 끊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언제든 다시 필 명분이나 핑계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 가장 흔한 명분이 배우자, 그다음이 직장 상사라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한 직후에 봤지, 내가 금연했는데, 너 때문에 못 끊는 거야! 내지 상사에게 깨진 이후에 다른 동료들 앞에서 봤죠? 저는 담배 끊었는데요, 저 상사 때문에 다시 피우는 거에요와 같은 명분이나 핑계를 찾아 다시 피운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담배회사의 막강한 로비력이 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실연, 부모님 상, 스트레스받을 때 등 힘든 일이 있을 때, 계단에 앉아 술 한병 들고 담배 한 대 피우면서 허공에 대고 담배연기를 후~욱 뱉어내는 장면을 삽입토록 유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힘든 일이 있으면 왠지 똑같이 해야만 할 것 같은 이미지를 잠재의식 속에 심는다는 것이다.


편의점 카운터에 담배가 쫘~악 전시되어 노출되게 해서 광고효과를 노리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고.


이 정도 이야기만 듣고도 담배를 끊은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는 결혼 직후에 제수씨가 담배 끊으라고 엄청 닦달을 했다고 하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담배를 끊었고, 하필 그 당시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2주간의 격리를 하게 되면서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


책 홍보 카피 같은『강력팀 형사도 담배를 끊게 만든 ‘STOP SMOKING’』...


금연 원하시는 분께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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