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15. 2022

베트남 오토바이 날치기, 경찰영사인 나도 당했다.

발로 뛰는 경찰영사(2018. 6. 17.)

호찌민의 재외국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영사인 나.


나도 당했다! 그 오토바이 날치기!

그것도 총으로 무장한 공안이 지키고 있는 총영사관 바로 앞에서.



손님이 오셔서 총영사관 구경시켜 드리고 저녁 먹으러 나가는 길.

GRAB은 너무 오래 걸리고, 택시는 안 잡히고...


부득이 내가 길을 건너 택시를 잡으려고 했는데, 마침 마일린 택시가 와서 손님들이 먼저 택시를 잡았다.

다시 길을 건너가 뒷문을 열고 택시를 타려는데, 갑자기 택시 앞에서 오토바이가 그 좁은 택시와 인도 사이를 비집고 들어 오는 거다.


순간, 역주행으로 이 좁은 곳을 왜 들어 오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토바이들이 역주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려니 하고는...


평소에도 베트남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만, 손님들도 계셔서 더~욱 친절하게 뒷문을 닫고는 Đi, Đi~(디, 디 - 가세요. 가세요.) 했다.

왼손에는 손가방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지나가라는 손짓까지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쌩하고 지나가면 되는데, 유독 쭈뼛쭈뼛하면서 지나갔다. 내 손가방을 어떻게 낚아채갈까 고민을 했었으리라.


그렇게 느릿느릿 지나가다가 내 앞을 지나는 순간...

내 몸이 순간적으로 왼쪽으로  쏠리면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날치기 예방을 위해 항상 손목 스트랩을 걸고 손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스트랩만 남았다. 볼 수록 마음이 쓰리다.


날치기닷!


생각할 겨를도 없이 좌회전을 해서 또다시 길을 역주행해 도망가는 오토바이 뒤를 쫓았다.

시내에서 날치기 당한 후, 오토바이를 뒤쫓으면서 "Hey!! Hey!!" 하면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는 외국인들을 보곤 했는데 그게 내가 될 줄이야...


"야. 이 XX야. 거기 서!!!", "야!!! 야!!! 이 XX야!!!!"


백여 미터를 쫓았으나, 어찌 오토바이를 따라잡겠는가.

역주행하는 오토바이를 차가 좀 들이받아(?) 주었으면 했지만, 그 녀석은 차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잘도 도망갔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손님들에게서 떨어졌던 스마트폰을 돌려받고, 일단 신용카드 정지부터 했다.

유모차에 탄 아이들도 있는데, 저녁 직전에 이런 불상사가 생겨 미안할 따름이었다.

손님들은 숙소로 돌아가고...


사무실 실무관과 같이 관할 벤탄 공안 지구대에 신고를 하러 갔다.

내가 평소 한국인 날치기 피해자들 지원을 하러 자주 가던 바로 그 공안 지구대다.


담당 하이(Hai) 중위가 맞아 준다.

미안하다며 이번엔 내가 당했다고 하자...

일거리가 또 하나 늘어났다며 잔뜩 짜증 난 표정이다.

그러더니 옵션을 준다.

간단히 분실로 처리해서 폴리스 리포트(도난 신고서)만 받아 가든지, 정식 도난으로 신고할 건지.

분실로 처리하면 피해자가 신고하는 내용을 기재하여 폴리스 리포트만 발급해 주면 끝나지만, 도난으로 신고하면 추가 수사, 상부 보고 등 일거리가 많아진다. 이는 한국 경찰과 비슷하다.


순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베트남 공안 신고 절차를 몸소 체험해서 추후 한국인들에게 안내를 해 주라고 내가 피해를 당했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 마음이 쓰리다. 이런 식으로 무한 긍정 에너지를 발휘하기에는...


외교관 신분증과 공항 출입증도 재발급받아야 하는데, 사유를 단순 분실로 기재하는 건 경우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정식 도난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다.



먼저 현장 탐문을 해서 도난이 맞는지 확인을 한다고 한다.

다른 하급자 공안과 같이 현장을 다시 방문했다.

목격자인 커피숍 직원으로부터 내가 피해 직후 소리 지르면서 뒤쫓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공안 지구대로 돌아왔다.

하급자 공안이 하이 중위에게 보고를 하니, 정식으로 접수하겠다 한다.

2018년 4월 9일 18시 20분경, 피해품은 외교관 신분증, 공항 출입증, 신용카드 2매, 직불카드 1매, 현금 베트남 동 등 포함 도합 400불 상당.


피해품을 기재한 서류를 제출하고 귀가하면서 괜히 일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영사님 때문에 저희 지구대 미제사건 1건 추가되었잖아요 한다. 아예 대놓고 잡을 의지가 없다.


다음 날 나를 위한 수사(?)를 시작했다.

총영사관 cc-tv 분석 결과, 횡단보도 건너는 나를 본 범인은 좌회전해서 가려다가 순간 방향을 틀어 목표물인 나에게 접근해서 날치기를 해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번호판은 분별할 수 없었고...


그나마 번호판 식별이 가능할 만한 총영사관 옆 피아노 가게와 도주로 상 cc-tv 위치까지 일일이 확인해서 공안에 통보를 했으나, 그 후로 아무 소식이 없다.

횡단보도에 서 있는 필자 / 횡단보도를 건너는 저자 / 저자를 보고 좌회전하려다 방향을 틀어 접근하는 오토바이 날치기범
왼쪽에 정차한 택시와 인도 사이 틈 새로 비집고 들어서는 오토바이 날치기범
내 손가방을 날치기 한 후, 왼쪽 대로를 역주행해서 달아나는 오토바이 날치기범


암튼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KOICA 봉사단원 안전 교육 때도 리얼하게 피해 사례를 설명하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그 후, 반응이 좋아서 하노이 KOICA 베트남 사무소에서 강의도 했다.

KOICA 봉사단원 안전집합 교육 -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학교
하노이 KOCA 베트남 사무소 해외여행 안전 교육


그리고, 얼마 전 같은 피해를 당한 민원인이 "그런데, 신고해도 공안이 못 잡겠죠?" 하길래 내 사례를 말씀드리면서 한 나라의 영사가 피해를 당해도 이렇게 처리되고 있습니다 했더니 이해를 한다.


혹시나 내가 날치기범을 현행범으로 잡았다면, 얼마 전 발생한 칼부림 피해처럼 보복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렇게 다른 면에서 도움이 되라고 그런 피해를 당했나 보다 하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가방을 날치기해 간 친구!

자네가 가져간 건 내 돈과 신용카드, 신분증 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보다 자네는 내 베트남에 대한 신뢰까지 가져간 거네. 그게 더 마음이 아프다네~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 호찌민 가짜택시를 추적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