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Off

by 만원식탁


얼마 전 #우라사와나오키 작가의 #플루토 라는 만화를 보았습니다. 로봇이 완전히 발달된 미래, 학교를 다니고 성장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기르는 로봇들이 인간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시대가 된다면? 사이보그가, 로봇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정도의 시대가 되면 그 손님께 요리를 내어 주는 느낌은 어떨까요? 저는 대략 알 것 같습니다. 저희 손님 중 한 분이 딱 그렇거든요!


손님들이 혼자 방문하실 땐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로 영화를 보면서 잠시 개인 시간을 즐기시는 휴식의 느낌, 또는 뭔가 생각에 잠겨 중간중간 큰 숨을 들이키고 내쉬는 고뇌의 느낌, 또는 저에게 말도 걸어 주고 술을 청하기도 하며 식사하시는 놀이의 느낌. 근데 이 손님께서 혼자 오시는 날엔 그 자리만 음소거해 놓은 것 같아요. 정말 문자 그대로 먹기만 합니다. 도착, 착석, 주문, 식사.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간결하게 식사를 마치고 퇴장. 항상 화이트 셔츠와 청바지, 흰 운동화.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로봇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친구분들과도 함께 오십니다. 표현은 없지만 저희 매장이 마음에 드셨나 봐요. 처음 동료분들과 함께 오셨을 때, 친구분들도 비슷하신가? 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시끌시끌, 왁자지껄 여느 분들과 다를 것 없이 신나게 즐기십니다.


매운 걸 엄청 잘 드십니다. 메뉴 중 불닭발떡볶이를 즐겨 드시는데, 한 접시는 꼭 주문하세요. 안주로 드시기도 하고, 식사로 드시기도 하고요. 상당히 매워서 보통 김을 먹든, 밥을 먹든, 주스를 마시든 입을 달래는데…. 이 손님만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한 접시를 깨끗이 비웁니다. 맛 센서가 고장 난 로봇처럼요.


플루토 마지막 권을 보다 말아 주방 한켠에 잠시 두었던 날, 사이보그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바 테이블에 착석하고는 늘 그랬던 대로 불닭발떡볶이 한 접시와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하셨습니다.


“사장님, 죄송한데 이 만화책 봐도 될까요?”

“네… 네? 그럼요!”


마지막 닭발을 발라내실 때 플루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제자리에 두고는 “플루토가 이렇게 끝나는 스토리였었나? 멋지네, 아톰.” 하고 혼잣말을 하시는데,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버렸습니다.


“말씀하시는 거 처음 들어 봐요. 하하하.”

“아, 그랬나요?”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해요. 덕분에 좋은 휴식 합니다.”


미팅이 많은 일을 하신대요. 하루 종일 사람들 말을 듣고 언쟁하고. 그러다가 이곳에서 쉰다고요. 말 속에 쌓여 하루를 살고 나면 실제로 내뱉었는지, 머릿속에서 생각만 한 건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한 접시 먹으면서 복기하고, 한 잔 마시면서 스스로와 대화한대요. 그제서야 속이 조용해진다고요. 그래서 이 공간이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요리를 하고 손님을 맞을 뿐인데, 제 일이 가치 있게 되는 건 오로지 손님들 덕분입니다.




#CountingCrows

- Angels of the Silences


Every night these silhouettes appear above my head. Little angels of the silences that climb into my bed and whisper. Every time I fall asleep, every time I dream.


"Did you come? Would you lie? Why'd you leave us 'till we're only good for..."


#만원식탁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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