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장, 항상 맛있는 음식 고마워. 여긴 맛도 맛인데 반겨 줘서 좋아. 당신이 딱히 살가운 성격은 아닌데, 문 열고 들어오는 느낌이 따뜻해. 붐빌 때는 붐비는 대로, 썰렁할 땐 썰렁한 대로. 따뜻해.
오늘 내가 좀 취했지. 미안해. 술집에 술을 마시고 왔네. 어, 이거 뭐야? 닭냉채? 원래 없었잖아. 좋다, 이거. 생맥주랑 닭냉채 하나만 부탁할게. 오늘 좀 슬픈 날이거든. 10년 정도 열심히 장사해 온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오늘 마침내 문 닫기로 결정했다네. 가게 이름을 내가 지어줬었거든. 손맛이 워낙 좋은 놈이라 학교 다닐 때 친구들끼리 술 마시면 막차는 맨날 걔네 집이었어. 술 오르면 먹고 싶어지는 것들 있잖아, 그런 요리들을 정말 잘했거든. 머리도 좋은 놈이라 좋은 대학 나오고 회사 생활 잘 하다가, 마흔 되던 해인가 갑자기 선언하듯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하더라고.
아~ 말도 마. 무지하게 잘됐지! 술꾼 친구들도 워낙 많았고. 회사 생활을 그래도 십수 년 했으니, 회사 생활도 좀 잘했겠어. 정말 행복하게 신나게 장사했지. 맛이야 뭐 두말할 것 없고.
코로나였어. 그래, 그래, 알아. 꼭 그것만 탓할 수는 없다는 거. 그런데 이 친구가 그때 약간 무너졌나 봐. 왜 그렇잖아. 문제도 상상의 범위 안에 있을 때 해결책도 고민해 보고 무슨 노력도 하고 계획도 하는데, 그 범위를 벗어나 버리니…. 현실감이 없더래. 자기 걱정한다고 주변에서 어떡할 거냐? 계획은 뭐냐? 괜찮냐? 끊임없이 물어보는데 미치겠더래. 그리고 성격이 바뀌어 버렸어. 침잠.
입에 모터가 달린 듯 말이 많던 친구였는데 말이 없어져 버렸어. 친구들 사이 최고 멋쟁이였는데 사람이 흐려져 버렸어. 요사이엔 그래도 사람 많고 그렇잖아. 응, 그 친구 가게도 다시 사람 많고 그렇긴 해. 그런데 가라앉은 마음이 다시 바로 서는 건 간단하지가 않나 봐. 지금의 가게는 손님이 차 있어도 공허한 느낌이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래도 제수씨도 그렇고 애들이 참 착해. 전혀 내색을 안 한대. 친구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뭐 별거 없더라고. 화이팅도 그만하려고. 여유를 잃은 마음에 쏘아대는 응원은 가시 같은 거니까. 괴로울 것 같아.
방금까지 그 친구 가게에서 마시다 오는 길이야. 오늘 이후로는 이제 예전처럼 밖에서 만나려고. 사람들은 왜 그럴까.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인생과 그 친구의 가게는 다 별개잖아. 그 친구의 덕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거잖아. 제발… 가게 닫는 걸 본인의 인생 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계산하고 영수증 뒤에 메모 하나 남기고 왔는데, 봤는지 모르겠다. 어, 다 먹었네. 한 접시 더 줘요.”
#선우정아
- 도망가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만원식탁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