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 각시

by 만원식탁


금요일 밤 늦은 퇴근. 집에 오니 어머니가 다녀가셨나 봅니다. 청소, 정리는 잘하는 편이지만 어머니가 다녀가시면 마법이라도 부린 듯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해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럼 기대를 가득 안고 주방으로. 냉장고를 열면? 갈비찜 한 냄비, 수육김치찜 한 냄비, 그리고… 이것, 커다란 락앤락 하나를 꽉 채운 파김치!


어머니 특유의 젓갈과 진한 양념을 잔뜩 머금은 파김치. 어릴 때 학교 갔다 돌아오다가 아파트 복도에서 이 냄새가 나면 돌진하듯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던 기억이 나네요. 아직 살짝 숨이 살아 있는데, 지금은 지금대로 맛있고 서서히 숨이 죽어 가다가… 어느 한순간 최고의 맛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몸은 무겁지만 그냥 잘 수가 없네요. 얼른 두 그릇 정도의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샤워를 합니다. 반복해서 보는 영화 '아메리칸셰프'를 켜고 밥, 김치찜, 파김치를 챙겨 TV 앞으로.


일단 파김치 한 젓가락을 우걱우걱 먹습니다. 그리고 방금 데운 김치찜 냄비를 오픈. 어머니 김치찜엔 김치만큼이나 많은 돼지고기 수육이 들어 있습니다. 입안 가득 밥, 김치찜, 수육을 채워 넣고 다시 파김치를 크게 한 젓가락. 고봉밥이 순식간에 비워집니다. 두 그릇 밥만 지은 게 다행입니다.


‘퇴근했니? 반찬 갖다 놨어. 잘 자고 내일 먹어.’


꽤 늦은 시간인데 문자가 왔습니다. 벌써 먹고 있지요! 하며 수육 하나를 더 집어 올리는데, 아직 영화는 1시간 반이나 남았네요. 맥주 한 캔을 따고 남은 파김치를 안주 삼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본 영화인데도 재밌어요. 캐스퍼 셰프가 아들이 만든 샌드위치를 손님한테 자랑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 파김치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어머니의 맛이 가끔씩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이적

- 거짓말


내겐 잘못이 없다고 했잖아

나는 좋은 사람이라 했잖아

상처까지 안아준다 했잖아


#만원식탁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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