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

by 만원식탁


환절기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길래 살짝 얇게 입고 다닌 것이 화근이었나 봐요. 요즘엔 봄, 가을 없이 날씨가 확확 바뀌니 에어컨을 서둘러 준비했습니다. 필터 청소를 하고 냉매 가스도 미리 점검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운전을 1시간 정도 했는데...


덜컥 감기 몸살이 왔네요. 작년 여름 때 구석 자리 손님께서 더워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어 작은 에어컨도 하나 더 설치했습니다. 설치를 마치고 풀가동 테스트를 했는데, 저녁 영업 시간부터 으슬으슬하더니만. 몸이 예전 같지가 않네요. 일어나니 정도가 심해져 출근 전 병원을 향했습니다.


3층에 위치한 병원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건물 입구에서 종종걸음으로 느릿느릿 할머니 한 분이 걸어 들어오십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잡고 잠시 기다리니 천천히 올라타셨습니다. 다른 버튼을 누르시지 않고 저랑 같이 병원 층에서 내리셨습니다.


"먼저 가세요."

"아닙니다. 저도 바쁘지 않아서요."


앞질러 가는 것이 괜히 민망하여 할머니 뒤에서 가만히 같이 걸었네요. 문을 열어 드리고 할머니가 먼저 접수하시고 저도 뒤따라 접수. 저는 역시 경미한 감기 몸살이었어요. 약국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나오는데 아까 그 할머니가 병원 문을 나오시더군요. 아무래도 저보다 진료 시간이 좀 더 걸리셨겠지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서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책을 읽었습니다. 요즘 최강록 셰프님의 에세이를 즐겨 읽습니다. 재밌는 건 요리책인데 음식 사진이 없어요. 음식 사진, 재료 사진 한 장 없이 글로만 채워진 요리책.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 그대로의 담백한 문체가 좋습니다.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심야 시간 라디오를 듣는 느낌입니다.


출근 시간이 되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엇! 그 할머니가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설마 버스도 같은 버스?'


그렇네요. 제가 타는 버스의 모습이 보이니 할머니도 타실 채비를 하시네요. 오늘 인연인가 봅니다. 하하하. 급히 오르시지 않도록 할머니 뒤에서, 버스 기사님께는 조금 티가 나게 큰 몸동작으로 섰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니 아침 출근 시간이 지난 텅 빈 버스엔 젊은 여성 승객 한 분뿐이었고. 할머니가 앉으실 때까지 출발하지 않는 버스 기사님이 고마웠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아까 읽던 글이나 마저 읽을까 싶어 책을 꺼내다가 앞을 보니 할머니는 여성분 옆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페이지를 펼치다가 다시 앞을 보았습니다. 텅 빈 버스에 많은 빈자리. 한 의자에만 나란히 두 분이 앉아 있습니다. 문 가까이 앉으셔도 되고, 넓은 자리에 편히 앉으셔도 됐을 텐데.


말동무가 그리우셨던 걸까요. 띄엄띄엄 말을 거시는지 오른쪽을 돌아보시네요. 들리진 않지만 먼저 계셨던 손님도 같이 돌아보며 끄덕끄덕하시는 걸 보니 가벼운 인사말 또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였겠지요. 오가는 대화에 큰 의미가 있었겠냐만 할머니에겐 작은 해방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내릴 때가 되어 문 앞에 섰는데 우연찮게 마주친 눈빛이 어색해 가볍게 목례를 드렸습니다. 알아보셨나 봐요. 미소로 답해주셨습니다.




#JasonMraz

- I Won't Give Up


And just like them old stars

I see that you've come so far

To be right where you are

How old is your soul


#만원식탁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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