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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Nov 06. 2022

양심의 색깔

<Yellow Submarine> , The Beatles

 금요일 저녁은 영화를 보는 날이다. 한 주간 마무리 기념으로 내게 주는 선물이다. 극장을 가는 것은 아니고, SNS에서 영화를 내려받아서 감상한다. 주로 '대부', '졸업', '미션' 등 추억의 명화나 다큐물을 즐겨 보는 편이. 서재에 스탠드 조명과 노트북 전원이 켜지면 금요일 시네마가 펼쳐진다.    

 

  얼마 전 금요일 밤에 대니 보일감독의 영화 <예스터데이>를 감상하였다. <예스터데이>는 비틀스의 대표적인 명곡이다. 지구촌에서 오직 한 사람만 비틀스를 기억한다라는 발칙한 영화의 광고 문구가 눈을 유혹했다. 비틀스의 음악이 사라진 세상이라니, 다소 황당한 설정이지만 흥미로운 상상이기도 했다.      


  영화는 로맨스와 비틀스 노래가 적절하게 조합되어 있었지만, 내용은 다소 뻔했고, 구성은 헐거웠다. 어떤 비평가는 사상 최고의 음악으로 만든 평범한 영화라며 혹평했다고 한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비틀스의 레퍼토리를 만날 수 있다는 귀 호강만으로 용서가 되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한 장면을 꼽으라면, 노란 잠수함이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주인공 잭 말릭에게 비틀스의 음악은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어차피 세상은 비틀스라는 밴드와 그들의 음악을 모르니 말이다. 덕분에 잭 말릭은 벼락스타가 되었고 숱한 무대가 주어졌다. 천재 뮤지션으로 포장된 된 주인공은 비틀스의 노래를 자신의 곡인 양 노래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객석에 있는 한 사내가 노란 잠수함 장난감을 들고 서 있었다. 노란 잠수함을 보게 된 주인공 잭 말랙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노란 잠수함, <Yellow submarine>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던 비틀스의 인기곡인 까닭이다. 장난감 노란 잠수함을 들고 있던 그 사내 또한 잭말릭처럼 비틀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노란 잠수함'은 양심을 상징한다. 주인공 잭 말릭은 비틀스 음악을 이용하여 스타가 되려는 야망과 그들의 음악을 세상에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사이에 갈등하고 있었다. 결국 장난감 노란 잠수함의 등장을 계기로 자신의 모든 곡이 비틀스라는 밴드의 음악임을 밝히면서 모든 음원을 무료로 풀어버린다


 이쯤 되면 결론이 뻔해진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다. 양심도, 사랑도 말이다. 이때의 방점은 잠수함이 아니라 노란색에 있다. 주인공에게 노란색은 양심의 빛깔이었다.     


 모든 색깔은 고유한 상징을 지니고 있다. 가령 흰색은 순수, 붉은색은 정열, 초록색은 평화 이런 식으로 말이다. 노란색은 심리적 안정감과 경고라는 의미가 있다. 동양에서의 노란색은 오행 가운데서 토()에 해당하며, 중앙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중국 황제의 공식 예복은 황금빛의 노란 곤룡포였다.     


 반면에 서양에서 노란색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흔히 선정적이면서 저급한 언론을 일컬어 황색언론이라 부른다. 또한 노란색은 비겁함을 뜻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성화(聖畫)에서 스승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의 복장은 노란색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노란색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감성은 같지 않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얼굴만큼이나 선호하는 색깔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를 좋아하는 사람과 강렬한 원색을 좋아하는 사람의 기질이 같을 수는 없다. 물론 색깔의 선호는 살아가는 경험치에 비례해서 바뀌기 마련일 것이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선호했던 색깔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은 진한 감색의 코발트 빛깔이다. 남원에 있는 실상사에서 모임을 마친 후, 평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반야봉과 짙푸른 코발트 밤하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일상의 업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면 서쪽 하늘도 코발트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 파아란 코발트 빛에서 반짝이던 샛별은 평화로웠다. 코발트 빛은 무탈한 일상을 허락하신 신의 은총이었다.    

 

  교사불자회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회색을 좋아했다. 불교를 상징하는 색이라면 회색일 것이다. 회색은 흰색과 검정이라는 양극단을 조화시키는 중용의 색이다. 또한 회색은 수행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명상의 색이기에 절에서는 승복과 방석은 물론이요, 가방과 모자까지도 회색빛이다. 심지어 삭발한 스님의 머리에서도 파르스름한 회색빛이 맴돈다.      


 지천명(知天命)의 한복판에서 갈색을 만났다. 남평에 위치한 어느 수도원의 재속 회원들과 더불어 신앙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의 상징은 갈색이었다. 재속 회원들의 공식 예복 또한 스카풀라라 부르는 갈색 수련복이었다. 그곳 수도사들은 겨울에도 양말도 신지 않았고 갈색의 수도복 차림이었다. 경당에 모셔진 성모님도 은은한 갈색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갈색과 더불어 피안의 세계를 향해 걸어갈지 모르겠다.     


 노란색 잠수함을 통하여 욕망에서 벗어난 잭말랙처럼 나의 영혼의 색깔을 소망해 본다. 물론 하늘의 도움이 없다면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언젠가 비가 그친 후, 허공에 피어난 쌍무지개를 황홀하게 본 적이 있었다. 그 무지개의 일곱 빛깔처럼 삶의 모든 여정마다 아름다운 색깔이 있는 법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아란 가을빛이 출렁거린다. 그 파란 하늘에 링고 스타가 노래했던 노란 잠수함이 떠돌고 있었다.  

  


<Yellow Submarine> - The Beatles     


In the town where I was born

Lived a man who sailed to sea

And he told us of his life

In the land of submarines

So we sailed up to the sun

'Til we found a sea of green

And we lived beneath the waves

In our yellow submarine

내가 태어난 마을에는

바다로 항해를 떠난 남자가 살았어

그는 우리에게 그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 줬지

잠수함의 나라에 대해

그래서 우린 태양을 향해 항해했어

초록의 바다를 찾을 때까지

그리고 우린 파도 밑에 살았어

우리 노란색 잠수함 안에서


          (중략)


As we live a life of ease

Every one of us has all we need (has all we need)

Sky of blue (sky of blue) and sea of green (and sea of green)

In our yellow submarine (in our yellow, submarine, ha ha)

우리가 쉬운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린 모두 우리가 필요한 게 다 있어

푸른 하늘, 푸른 바다

우리 노란 잠수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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