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늦은 오후의 산행은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무등산 원효사 방면으로 가는 1187번 버스는 삼십 분에 한 번만 운행한다. 나를 차에 태운 아들은 네비게이션으로 버스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급하게 운전했다. 아들은 요리조리 지름길로 차를 몰더니 용케 버스 도착 전에 승강장에 도착했다. 추격은 성공적이었다.
‘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버스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제 급할 일은 없었다. 차분하게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모바일로 날씨 검색에 열중했다. 잠시 후 버스가 다가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는데..., 1187번 버스가 휭하니 내 곁을 지나가 버렸다. 승강장에는 나밖에 없었는데 그만 딴짓하는 바람에...기사는 나를 그저 승강장을 지나가는 행인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무정하게 지나쳐버린 버스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보자니 허탈함과 짜증이 훅! 하니 올라왔다. 무심한 버스 기사와 핸드폰을 보며 해찰을 부렸던 내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남은 오후 시간을 확인하면서 등산과 하산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냥 산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파란 가을 하늘과 단풍에 물드는 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갈등은 짧을수록 정신 건강에 좋은 법이다. 그냥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앞으로 삼십 분 동안 우뚝하니 승장장에 있어야 했다. 무정한 1187번 버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짜증이 사라져갔다. 그렇게 마음을 비웠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1187-1번 버스가 달려오고 있었다. 눈앞에서 놓쳐 버린 버스와 동일한 노선이었다. 경악은 사라지고 경이로움이 찾아왔다. 순리를 따르면 이렇게 술술 해결되는 법인가 싶었다. 덕분에 오후 햇살을 받으며 가을 산의 너른 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숲길을 걸으면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보았다.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는 평온한 일상을 소망한다. 하지만 하루라도 근심, 걱정이 없는 날이 있을까? ‘오늘 하루도 무사히’라는 문구 아래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루의 무탈을 기원하는 소녀의 기도는 마치 우리의 바램을 대신하는 것 같다.
비틀스의 <Let it be> 는 걱정과 근심에 대한 지혜의 노래다. 이 곡은 비틀스 해체 직전인 1970년 3월에 발표된 마지막 정규앨범에 수록되었다. 발표 당시 멤버들의 마음은 밴드를 떠났지만, 이 곡은 당당히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이 곡을 비틀스의 3대 명곡으로 꼽는다. 또한 <Let it be> 은 개그콘서트와 광고 음악, 기차의 알림으로 사용되어진 탓에 친근한 음악이다.
<Let it be> 은 밴드의 해체를 막고 싶었던 폴 메카트니의 고뇌가 들어있다. 비틀스의 미래를 고민하던 어느 날, 폴 메카트니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 메리 패트리샤가 나타났다. 메리는 꿈에서 아들 폴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속삭였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난 폴은 어머니 메리의 몽중 전언을 모티프로 해서 <Let it be>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언젠가, 도올 김용옥 선생이 비틀스의 <Let it be> 은 성모마리아에 대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아마도 ‘어머니 마리아께서 내게 다가와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라는 부분 때문일 것이다. 외국에서도 ‘마더 메리 Mother Mary’가 성모마리아를 뜻한다는 설과 폴 메카트니가 어렸던 시절에 돌아간 메리 패트리샤라는 설이 있다.
논란의 종결은 폴 메카트니가 인터뷰에서 ‘마더 메리’란 자신의 어머니라고 밝힘으로써 마무리됐다. 물론 성모마리아로 해석한다고 해서 틀린 것만은 아니다. 예술 작품의 해석은 창작자가 아닌 수용자의 몫인 까닭이다. 그래서 꿈보다 해몽이 더 중요한 법이다.
비틀스의 초기 음악의 주제는 남녀의 ‘사랑’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음악 세계는 공연을 중단하고, 스튜디오 녹음으로 활동이 바뀌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특히 <Rubber soul> 앨범에서부터 주제가 다양해졌다. 멤버들이 인도의 명상에 영향을 받은 후로는 한층 더 숙성되었다. 그런 연유로 비틀스의 명곡들은 주로 후반기 앨범에 들어있는데, <Let it be> 는 그 정점에 있는 곡이다.
<한마음 선원>이라는 사찰이 있다. 이곳의 종지(宗旨)는 일체 모든 것을 주인공에게 돌리는 것을 수행법으로 한다. 주인공이란 불성(佛性)을 뜻한다. 일어나는 모든 경계에 끄달리지 말고, 주인공 자리에 놓은 채, 관(바라봄)함으로써 인생의 고(苦)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는 ‘대행선사’라는 위대한 비구니 스님의 가르침인데, <Let it be> 의 지혜와 통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선원과 인연을 맺었고 안양 본원에서 ‘원황’이라는 법명을 받았었다. 지금도 한마음 선원과 대행스님, 혜월 광주지원장 스님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특히 힘든 시절, 용기를 주신 혜월 스님의 자비는 잊을 수가 없다. 비록 내 인연의 고리는 가톨릭 수도원으로 연결되었지만, 한마음 선원에 대한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모든 걸 주인공에게 바치세요”, “그 자리에 돌려놓으세요”라며 격려해주신 혜월스님과매 주 귀한 법문을 문자로 보내준 법우님의 따스함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이러한 세상의 인연 덕분인 것 같다. 그동안 받았던 자비는 이웃에게 회향을 해야 한다. 이 순간에도 삶의 진창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Let it be>를 염원한다.
우주의 진리가 종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여러 개일지라도 밝은 달은 하나뿐이니 말이다. 다시금 <Let it be>...<Let it be>... 를 염하며 눈을 감고, 마음에 등불을 밝혀본다.
<Let it be>, The Beatles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내가 근심의 시기에 처해 있을 때
어머니께서 다가와 / 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순리에 맡기거라
And in my hour of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
let it be
내가 암흑의 시간 속에서 있을 때에도
어머니는 내 앞에 똑바로 서서 / 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순리에 맡기거라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그냥 그대로 둬요 / 순리에 맡기자고요
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봐요 / 순리에 맡기거라
And when the broken-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 afr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세상을 살아가면 상심을 겪게 되는
사람들이 좌절을 할 때에도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 / 순리에 맡기거라
(이하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