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만트라

< Here Comes The Sun >, The Beatles

by 박신호

12월 초, 주말 이른 아침. 화순 북면에 숨겨진 작은 마을 곰실로 가고 있었다. 전날 아내는 그곳에 살고 있는 친한 언니와 함께 김장을 하겠노라며 떠났다. 저녁 무렵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종일 배추를 씻고 양념을 만드는 등 쉴 새가 없었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일손이 부족하니 아침 일찍 곰실마을로 와달라고 했다.


김장할 때 아내의 권력은 절대적이니,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차에 시동을 켜고 출발했다. 남도의 12월 초는 겨울이라기보다는 만추의 정취였다. 하늘에서는 밝은 햇살이 싸늘한 기온과 손잡고 지상에 내려오고 있었다. 차 창문을 열자 상큼한 공기가 훅하니 들어왔다. 그 맑은 자연의 기운이 폐부에 닿을 몸에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차는 식영정과 소쇄원을 지나고 있었다.


화순 창랑적벽을 옆에 끼고서, 동복 저수지 방면으로 접어들었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눈 덮인 히말라야도, 눈부신 프로방스도 아니건만, 물아일체의 신비감이 느껴졌다. 이럴 때는 분위기를 돋을 음악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플레이어 버튼을 누르자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흘려 나왔다. 남도의 정경과 조지 해리슨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앙상블을 이라니... 비록 일꾼으로 호출되어 가건만 행복했다.


< Here Comes The Sun >은 희망의 노래다. 조용한 비틀스라 불렸던 조지 해리슨은 이 노래를 만들 무렵 최악의 상태였다. 그는 얼마 전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곤욕을 치렀고, 편도선 수술을 받아서 노래하기도 힘들었으며, 매니저의 죽음 이후 설립한 자회사의 경영난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게다가 멤버들의 불화는 정점으로 달리고 있었으니, 마치 불행들이 손을 맞잡고 몰려오는 상황이었다. 결국 패닉에 이른 조지 해리슨은 절친 에릭 크립튼의 집으로 도피하고 말았다.


에릭 크립튼의 말에 따르면 4월 봄날, 함께 정원을 거닐던 조지 해리슨이 즉흥적으로 만든 곡이라고 했다. 모처럼 마음이 편안해진 조지의 여유가 묻어있는 < Here Comes The Sun >은 구절 끝에 반복되는 기타 리프가 인상적이다. 이 곡은 1969년 발표된 비틀스의 명반 <Abbey Road> B면 첫 트랙에 수록되었다.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로 시작되는 첫 소절을 풀이하자면 ‘해가 뜬다, 해가 뜬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이다. 힘든 시기에 친구의 뜨락에서 동트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을 조지 해리슨이 상상된다. 그래서일까? <Here Comes The Sun>은 시종일관 따스하고 분위기가 흐른다. 먹구름 사이로 쨍하니 햇살이 비출 것만 같다.


얼마 전 조선 중기 오희문의 쓴『쇄미록』을 읽으면서 곡진(曲盡)한 인생살이를 느꼈다. ‘쓸모없는 기록’이란 뜻을 지닌 『쇄미록』은 전란을 견뎌낸 삶에 대한 인생 보고서였다. 사백 년 전 기록에 공감이 되었던 것은 그때와 오늘날의 고통이 너무 닮아서였다.


『쇄미록』의 기록은 1592년 임진년부터 시작하고 있다. 저자 오희문은 양반임에도 거대한 국가적 재앙에 앞에서는 일반 양민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굶주림과 병고, 어머니와 형제를 비롯한 피붙이와 이별, 산속에서 피난 생활과 극도의 헐벗음. 바야흐로 귀여운 막내딸이 병고 속에 눈을 감을 때는 오희문 내외의 비탄은 절정에 달했다. 나 또한 그 절절한 아픔에 마음이 먹먹해서 잠시 책을 덮어야 했다.


고통이란 누구나 예외 없이 치러야 할 시험이다. 그리고 ‘천지불인(天地不人)’이라는 노자의 말처럼 시련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이 수동태임을 깨닫게 된다. 운명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왔다가 때가 되면 물러갈 뿐이다. 왜 선한 이가 당하는지? 왜 악인은 호의호식하며 사는지?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고통의 바닷속에서도 구명조끼가 있으니,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으로 나왔던 희망이다



어느새 이순(耳順)이 가까워지고 있다. 반평생의 경험으로 고통을 대하는 매뉴얼을 터득할 수 있었다. 키워드는 역시 마음이다. 풀이하자면 현실을 수용하고 이를 객관화할 수 있는 의식적인 노력 말이다. '방하착(放下著)'이라는 말처럼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자중자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럴 때 불행의 극판을 예상하고는 섣부른 행동을 하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마음속에 끝없이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를 끊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희망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럴 때, 방편으로 긍정적인 말의 반복과 밝은 음악을 듣는 것은 유용하니, 밝고 힘찬 에너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Here Comes The Sun" 노랫말처럼. 그렇게 < Here Comes The Sun >과 함께 달리다 보니, 어느덧 곰실마을 초입에 이르렀다. 멀리서 고무장갑을 낀 한떼의 아줌마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해야 떠라, 해야 떠라, 해야 떠라". 희망의 만트라를 중얼거렸다.


Here Comes the Sun – The Beatles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해가 뜬다, 해가 뜬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

Little darling, it's been a long cold lonely winter

Little darling, it feels like years since it's been here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내 사랑, 길고 추운 외로운 겨울이었어

내 사랑, 여기 그것이 몇 년이나 된 것 같아

자 해가 뜬다, 자 해가 뜬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


(중략)


Sun, sun, sun, here it comes...(반복)

해, 해, 해, 자 해가 뜬다... (반복)


Little darling, I feel that ice is slowly melting

Little darling, it seems like years since it's been clear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It's all right

내 사랑, 얼음이 서서히 녹고 있는 것을 느껴

내 사랑, 날이 갠 지도 몇 년이나 된 것 같아

자 해가 뜬다, 자 해가 뜬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

괜찮아

이전 19화줄리안의 눈물